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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r 18. 2023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온기

백수린,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2023. 3. 16. 낭의 날. 


어제는 여차저차하여 아침 일찍부터 홍대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하늘이 흐리고 바람의 기색도 심상치 않은 게 우산을 챙겼어야 했나 뒤늦게 날씨 앱을 열었다. 바로 며칠 전만 해도 낮 최고기온 22도라는 예보에 오래전 3월에 쏟아졌던 눈을 떠올리며 혼란스러웠는데, 어제는 버스가 합정에 들어서니 정체 모를 꽃가루 뭉치가 함박눈처럼 흩날렸고 점심께는 승모근을 바짝 긴장시킨 채 바들바들 떨며 거리를 걸었다. 친구에게 날씨의 이런 변덕을 한탄하며 톡을 보냈다. 꽃샘추위라는 예쁜 이름의 무서운 추위,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지, 꽃샘추위가 있었지. 명명되자 선선히 받아들여지고, 당연한 것이 되자 아무렇지 않아졌다. 봄은 봄인 것이다. 그래도 늦은 오후의 긴 귀갓길이 힘에 겹긴 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예약도서 도착 알림 톡을 받고서 반가운 마음부터 들었다. 


백수린 작가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을 읽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만에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이런 온기를 언제 또 얻었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도 작년, 가을에 막 접어든 무렵이었나, 한정원 작가의 에세이 <시와 산책>을 읽었을 때였다. 생각난 김에 그녀의 책도 꺼내 나란히 읽었다. 


내 책장의 책들을 순전히 색과 온도로 재배치한다면, 나는 이 두 권을 같은 칸에 넣을 것이다. 한갓진 골목길 산책하듯 문장 사이를 거닐거나 섬세하게 그려놓은 장면 속에 볕 쬐는 어린 동물처럼 머물게 된다. 시인과 소설가가 눈여겨본 동네와 풍경, 사람과 사물의 온화한 아름다움 덕분에 움츠렸던 몸을 펴고 비로소 계절을 맞이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는 건 자기 집을 찾는 여정 같아.”
언니가 그렇게 말한 건 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타인의 말이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상태를 찾아가는 여정 말이야.”
그 말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p40


“어째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죄다 하찮고 세상의 눈으로 보면 쓸모없는 것들뿐인 걸까. 하지만 이제 나는 쓸모없는 것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촘촘한 결로 세분되는 행복의 감각들을 기억하며 살고 싶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할 것이므로.” p.59


“내 마음은 언제나, 사람들이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이고 매일매일 흔들린다는 걸 아는 사람들 쪽으로 흐른다. 나는 우리가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때, 우리의 궤적은 일정한 보폭으로 이루어진 단호한 행진의 걸음이 아니라 앞으로 갔다 멈추고 심지어 때로는 뒤로 가기도 하는 춤의 스텝을 닮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그런 방식으로만 아주 천천히 나아간다고.”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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