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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y 20. 2023

무엇으로 엄마를 기억하게 될까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나는 H마트에만 가면 운다. (...) 그러다가 건조식품 코너에서 훌쩍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제 전화를 걸어, 우리가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내가 여전히 한국인이긴 할까?" p9, 10 
Ever since my mom died, I cry in H Mart.  (...) Sobbing near the dry goods, asking myself, “Am I even Korean anymore if there’s no one left in my life to call and ask which brand of seaweed we used to buy?” 


<H마트에서 울다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자란 뮤지션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 곳곳에 저자가 낯설게 환기시키는 한국 음식 묘사며 한국 외가에서의 흥미로운 일화들, 엄마의 가슴아픈 암투병기가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한다. 


양육자와의 관계와 어린 시절 형성해나간 정체성의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것들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저자에게는 엄마가 해준 집밥이고 엄마와 함께한 밥상인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면, 집 안팎에서 부모와 함께한 수많은 밥상들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무엇보다 엄마가 해준 밥. 지극히 평범한 음식. 


내 육체를 키워내고 이제는 내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게 엄마의 집밥이란 걸 안다. 닭볶음탕, 해물파전, 전처럼 넓게 부쳐 네모나게 썰어서는 도시락에 넣어주던 계란반찬, 하이라이스, 미역과 양파가 흐물해질만큼 오래 끓인 미역국, 아주 작게 사각 썰기한 달콤한 깍두기, 국에 가까운 김치찌개, 심심한 콩나물무침, 우리가 짠지로 부르던 무우생채. 다진 파프리카로 뒤덮힌 계란찜. 엄마의 모든 국과 찌개에 양파가 들어간다는 게 조금 특별하다 할 수 있을까. 그 양파사랑을 이어받아 나도 거의 모든 국과 찬에 양파를 넣는다. 


이 모든 게 엄마만이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요리’도 아니라서 엄마 살아 생전 반드시 배워야할 레시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먼훗날 이 음식들 앞에서 엄마를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얼마나 허기진 채 엄마를 그리워하게 될지는 확신할 수 있다. 그런 허기는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겠지. 그런 날이 언제든 찾아오고야 말테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면 당장 제주 집으로 달려가고 싶어진다. 나를 보면 밥상부터 차리려 하는 엄마가 있는 집으로. 그리고 몇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떠올린다. 엄마에게는 고향의 집밥을 되살려줄 엄마가 없구나. 하지만 엄마에게 그 기억을 같이 나눌 자매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그리고 내게도 그런 자매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언제고 엄마에게 당신의 어린 시절 집밥 이야기를 들려달라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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