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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un 26. 2023

서로의 바깥에서

비비언 고닉, <사나운 애착>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른 사람의 바깥에 있으므로”
(하인리히 뵐,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그래, 우리는 서로의 바깥에 있지. 알고 있는데도 나는 호시탐탐 네 경계선 언저리를 맴돌곤 해. 네 영역의 주권이 네게로 이양된 지 이미 십수년이 지났는데도, 네가 나 없이는 잠도 못 자던 그 시절의 여파가 아직 내게 남아 있는 건가. 한 인간의 생명이 온전히 내 손에 달려 있어 그저 무섭고 막막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주권이니 이양이니 이런 오만하고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서슴없이 하는 내가 되었어. 나도 내가 이럴줄은 몰랐지. 


그나마 다행인 건 네가 선 긋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고, 나 또한 그런 경계 없이는 혈육과도 평화롭게 살지 못한다는 점일 거야. 그래서 우리는 그럭저럭 평온한 거리를 유지하며 잘 살 수 있을 테지. 


그런 믿음으로, 오늘 나는 아주아주 조오금 억울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엄마의 화이팅보다는 침묵이 더 나은 때이며, 노파심에 몇 마디 더 얹긴 했으므로 순수한 화이팅이 아니긴 했고, 어쨌든 수험생의 컨디션은 소중하니까, 다 내 잘못이 맞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다 “이렇게 셋이서 걸으니까 너무 좋지 않니?” 하고 딴청을 부렸다. 그 말에 남편도 미세먼지가 괜찮나 보다고 거들었다. 


토요일 늦은 오전, 아파트 단지의 벚나무 길을 셋이서 걸었다. 거리를 비현실적인 분홍빛으로 채색하던 몇 주 전도 좋았지만, 꽃진 뒤의 연하고 순한 이파리들로 푸르러가는 요즘도 더할나위없이 좋다. 


J는 도서관으로, 남편과 나는 올 들어 새로 발견한 주말 아지트(커피는 그닥 맛이 없지만 남편이 인생의자를 발견한 카페)로 가는 길. 단지 입구에서 나는 또 참지 못하고 J의 등에 대고 외치고 말았다. “밥은 굶지 마라!” 알아서 한다고, 입버릇처럼 하는 말도 이제 귀찮은지 J는 뒤도 안 돌아보고 길을 건너고, 나는 남편이랑 터덜터덜 주차장으로. 


우리의 산책은 십분 남짓했지만, 이 짧은 산책길을 오래 기억하려고 간만에 육아(라기보다는 엄마와 딸의 성장 기록에 가까운)일기를 끼적이기로 했다. 겸사겸사 독서일기까지.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


완독하고 몇 주 지났다고 그 좋았던 감상이 벌써 흐릿해지니, 앞으로는 독서기록을 게을리하지 말자고, 짧게라도 남겨보자고 재차 다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의 절단신공!


책은, 이런 주제의 책이 으레 그렇듯이 '어머니에 대한 이해, 이전 관계에 대한 성찰, 새로운 관계맺음에의 섣부른 희망'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래 맘대로 하든지.” 나 하는 짓이 어찌나 마음에 안 드는지 목소리까지 떨린다. 엄마의 오만. 엄마의 경멸. 엄마에게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기질. 절대적으로 엄마 곁에 머물러 있을 것들. 언어의 상징이요 존재의 숙어로 이것들이야말로 엄마의 자아를 완성한다고 믿는다. 타인을 경멸하고 무시하는 건 불쾌한 일에서 헤어나는 엄마만의 방식, 당신과 타인을 분리하는 방법, 옳고 그름을 아는 법, 당신의 주장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 순간 엄마의 삶이 이해되면서 묵직한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만 같다. 
(...) 우리 모녀는 함께한 삶에서 같이 살아남았고 모든 순간은 아니었다 해도 서로의 곁을 지켰으며 그렇게 우리만 아는 동지애를 키워냈다.
(...) 안정적인 관계는 언제 휘발될지 모른다. 어쩌면 끊임없는 변화, 유동적인 상태야말로 우리가 날마다 맞닥뜨리는 진실이 아닐까 한다. 이 불안정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요. 인생의 신비와 약속을 관통하는 진리가 아닐까. 엄마와 나는 더 이상 얼굴을 가까이 맞대고 잊지 않는다. 드디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영구적으로 성취되었다. 나는 우리 사이의 거리를 흡족하게 엿본다. 약간의 공간이 나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일용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내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 309-312


모녀 간에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영구적으로 성취되었고, 그 거리감은 저자에게 흡족감, 일용할 기쁨을 맛보게하며 드디어 "내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날 것이라는 믿음”을 안겨준다. 바로 이렇게 아름답게 정리하며 끝날 줄 알았던 그녀의 회고록은, 예기치 않게 방향을 확 틀어버린다. 다시금 ‘사나운’ 갈등의 한복판에서, 그럼에도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지속될 강렬한 ‘애착’을 드러내며 끝나버리는 것이다. 


마치 이게 진짜 인생이라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서로를 반복하여 상처주는 일들 속에서도 분명 변화는 존재하며, 부딪혀 떨어진 서로의 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들고 기어이 그 곁을 지키고 있음을 알려주듯이. 


마지막 장면과 마지막 문장이 주는 여운이 엄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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