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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18. 2023

생존을 위해 선택해야 한다면,

브라이언 헤어 &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만약 옳음과 친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택하라."
- <아름다운 아이> p84

#브라이언헤어 #버네사우즈 #디플롯 #생명과학 #호모사피엔스의진화비결 #협력 #친화력 


브라이언 헤어와 베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오랜만에 친구K와 함께 읽었다. K는 다섯달 만에 만났다. 내가 한가해지자 바톤을 이어받듯 그녀가 바빠져서 겨우 날짜를 잡고 보니 벌써 7월 말. 한 해의 절반이 훌쩍 가버렸다. 내 이북과 K의 책을 나란히 놓고서야 표지가 한차례 바뀌었음을 알았다. 다정이라는 키워드,에세이 제목 같은 문장형 제목과 표지 모두 허들을 낮추는 데 일조했을 듯한데, 실제 가독성과 흡인력이 뛰어났다. 잘 빠진 도로를 정체 구간 없이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이었다.


원제는 Survival of the Friendliest. 저자는 자연선택에 유리하게 작용한 최적자의 특성으로 '다정함'을 주장한다. 호의와 친절, 다정, 협력을 아우르는 개념으로서의 'Friendiness', 달리 말하자면 인간의 '친화력'이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이었으며, 다른 사람 종이 멸종하는 와중에 호모 사피엔스가 생존/번영할 수 있었던 비결. "종의 생존에 핵심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인지능력은 진화하는데, '협력'은 보다 큰 규모로 무리 지어 살던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핵심 전략이었기에, 인류는 '자기가축화 과정'을 통해서 '공격성'이 아닌 '친사회성', 협력을 위한 '친화력'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는 것.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 다윈을 위시하여 그의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도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 방법은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다정함은 일련의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 협력, 또는 타인에 대한 긍정적인 행동으로 대략 정의할 수 있는데 (...) 인간 사회에서 다정함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누군가와 가까이 지내는 단순한 행동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떤 공동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협력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등의 복합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친화력이 높아질수록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이 강화되는 발달 패턴을 보이고 관련 호르몬 수치가 높은 개인들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공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정해지도록 진화했다는 인류는 왜 그토록 반복적으로 잔혹서사를 쌓아왔을까. 다른 인종 혹은 민족, 타 집단을 향한 극악무도한 폭력은 왜 멈추지 않는 걸까. 이 지점에서 '다정의 역설'이 등장한다. 집단 내 타인까지 끌어안지만, 위협적이라 판단되는 외부인은 철저하게 '비인간화'시킨다. 우리의 친화력은 '우리' 안으로 포섭한 이들에게는 관용을 베푸는 동시에 외부인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며, 이런 폭력은 또 다른 보복성 비인간화를 불러온다.


그래서 결론은? 서로 다른 이들과의 접촉과 교류 기회 확장, 다양성이 보장되는 시스템과 정책 구축. 하지만 이상이 실현되기에는 너무 많은 이해와 갈등이 충돌하는 복잡한 현실을 토로하다 말고 우리는 한숨을 내쉬곤 했다. 저자는 개와의 우정에서 얻은 교훈으로 책을 마무리하는데...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


그래서 생각했지. 아무래도 개를 키워야 하나... K가 말했다. 친구로 고양이는 어때, 물을까 하다가 K가 고양이를 꺼려 한다는 걸 기억해냈고 너는 이미 다정한 인간이라 괜찮아, 하는 말도 쑥스러워 삼켜버렸다. 오랜 친구에게 새삼 마음을 이야기하는 건 낯간지럽다 생각했는데, 이 다정한 친구는 그날 저녁 대꾸할 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다정한 톡을 보내왔다. 다정도 연습이고 훈련이다 생각하며 답을 보냈다. 이런 다정에의 노력은 순전히 이 책의 필연적인 부산물...


강자가 적자이며 경쟁만이 살 길이라 주장하는 세상에서, 나날이 심각해지는 다양한 집단 갈등에 노출돼 있는데다가, 더욱이 '접촉과 교류의 기회'가 박탈되다시피 했던 코로나 팬데믹을 거쳤으니,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다는 말은 일면 서글프게도 여겨졌다. ('한'만이 아니라) '정'도 사무친 우리인데 그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무정해지는 방증 같아서. 그럼에도 인간의 선한 본성, 친절과 선의를 믿고 싶고, 서로의 다정함에 기대 이 시기를 잘 버텨보고 싶은 우리의 바람이 느껴져서.


"When I choose to see the good side of things, I'm not being naive. It is strategic and necessary. It's how I've learned to survive through everything. ...This is how I fight."

"I know you are all fighting because you are scared and confused. I'm confused too. All day... I don't know what the heck is going on. But somehow... this feels like it's all my fault. I don't know. The only thing I do know... is that we have to be kind. Please, be kind. Especially when we don't know what's going on."

by Waymond Wang,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덧.

후속독서로 <생명을 묻다> 5장 진화, 6장 우생학, 9장 이기적/이타적 유전자 편을 읽었다. 관련 이론과 개념 정리, 시각의 균형감을 얻는 데 도움을 얻었다. 분야별 튼튼한 개론서가 책장에 있으면 이래서 든든.



 "과학적 방법론에 의한 인간 이해가 현재로서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더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다채롭게 모색하려는 자세가 우리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
- <생명을 묻다>, p159, #과학책을읽는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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