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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Dec 19. 2023

종이책의 검색 기능

#룰루밀러 #곰출판 #에세이 #혼돈과질서 #정체성 #상실과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오늘의장면 



나는 스탠지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그 지진과 바늘에 대한 나의 집착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건 왜 그러는지에 관한 집착이야”라고 나는 말했다. 
“한 사람을 계속 나아가도록 몰아대는 건 뭘까?” 
그때 그 친구가 한 말은 “흠”이 다여서 나는 맥이 좀 빠졌지만, 다음 날 오후 이메일을 통해 좀 더 긴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 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 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낙관주의에 비하면 훨씬 더 심오하고 자의식은 훨씬 덜하지. 우리는 그 파괴되지 않는 것을 온갖 종류의 다른 상징과 희망과 야심 등으로 가리고 있어. 이런 상징과 희망과 야심은 그 밑에 무엇이 있는지 인정하라고 강요하지 않으니까. 음... 만약 그 모든 잉여를 제거한다면(혹은 제거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파괴되지 않는 그것을 찾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일단 그것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카프카는 여기서 더 깊게 들어가. 그는 우리가 파괴되지 않는 것을 낙관적이거나 긍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해주지 않아), 그것은 우리를 실제로 찢어발기고 파괴할 수도 있어.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지...”

-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p130-131


2022년 10월 26일의 독서일기 중에서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에 대해 카프카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졌다. 원문을 찾아 구글링해보다가 아무래도 그의 일기에서 언급된 듯하여 <카프카의 일기>를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놨다. 장바구니에 책을 넣는데 맘이 설레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류의 설렘이 참 오랜만이라 기록해두자 했다. 오늘치의 기쁨을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이 채워줬다.


문제는 이 책이 장장 944쪽에 달하는 양장본이라는 거다. 총12권의 일기와 여행일기, 게다가 서류묶음(네에???)까지 포함된 국내 최초 일기 완역본이라는데... 이걸 언제 찾으려나.

종이책의 검색 기능은 완독해야 그나마 써먹을 수 있다는 게 너무너무 아쉽다.  


죽는 날까지 종이책을 숭상할 사람으로서 인정하기 싫긴 하지만, 
전자책의 쓸모를 처음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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