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를 따라가게 될 때
간밤에 꿈을 꾸었다. 다소 서러운 꿈이어서 어린애처럼 마음이 흔들렸다. 침대에서 나와 아이에게 갔다. 머리 밑에 베개를 바로 고여주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줬다. 아토피가 도지는 바람에 아이는 볼이 발갛게 튼 채 겨울을 났다. 아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엄마, 자..." 속삭이듯 말했다. 체험학습 전날이었고 아이는 자신이 아닌 엄마가 늦잠 자서 늦을까 봐 걱정하는 게 분명했다. "엄마도 잘 거야. 좋은 꿈 꿔라." 아이가 눈을 감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의 작고 동그란 머리를 쓰다듬다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아이가 다시 잠든 걸 확인한 뒤 나는 아이의 가슴에 살며시 귀를 갖다 댔다. 심장이 규칙적이고도 단정하게 뛰는 게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마음이 금세 차분해졌다. 내 소중한 일부를 아이 심장 속에 숨겨둔 것처럼. 힘차게 때로는 평온하게 뛰는 심장에게 나의 안녕과 안위를 묻듯이... 심란하거나 울적한 일이 생기면 나는 그렇게 아이의 작은 몸뚱이를 부둥켜안고 가슴에 귀를 대곤 했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 거실 책상 앞에 앉았다. 커튼이 모두 젖혀진 창밖으로 어둠에 잠긴 바깥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산을 휘감은 도로 위로 전조등 밝힌 자동차가 이따금씩 지나갔다. 어둠 속에 가로등이나 주택의 불빛이 점점이 박힌 걸 보고 있자니 언젠가의 밤바다가 떠올랐다.
오징어 배의 집어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밤바다를 수놓고 있었다. 팔뚝에 소름 돋는 낭만적인 밤이었으나, 내 옆에는 잘생긴 남학생이 아닌 무뚝뚝한 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우리는 방파제에 걸터앉아 바다만 바라봤다. 어머니 말대로 (꼭 한숨 쉬며 말하곤 했는데) 나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딸이었다. 서툰 감정표현과 수줍음이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다. 아버지도 나를 옆에 앉혀놓곤 어색했는지 저게 오징어 배라느니, 저렇게 오징어를 잡아봤다느니, 싱싱하고 맛있었다느니 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아빠가 잡아온 거 먹어봤을 텐데, 정말 기억 안 나니?" 정색하고 묻기도 했다. 나 역시 쑥스러워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이다가 세차게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아버지는 맥락도 없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던져놓던 끝에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긴장했다.
"아빠가 요새 많이 힘들다..."
아버지 마음을 짓누르는 것들을 들으면서 나는 말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바다 냄새가 점점 더 비릿해졌다. 집어등 불빛을 스무 개쯤 세었을 때 다음날 모의고사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언제쯤 핑계를 대고 일어설까 궁리하던 참에 아버지가 드디어 방파제에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 밤 고집스레 지켰던 내 침묵을 후회하며 가만히 숨을 죽인다. 이십여 년 전 그날 밤이, 잠잠하던 밤바다가, 드문드문 빛나던 집어등과 그걸 가리키던 아버지의 손이, 그 나직나직한 목소리가 시간을 거슬러 다시 나를 찾아온다.
아버지가 외로웠겠구나, 나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나는 당시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이상도 하지. 이제와 보니 그날의 아버지는 생각보다 젊었고, 지금의 나는 돌이킬 수 없이 나이 든 것만 같다. 막상 엄마가 되어 이 나이에 이르고 보니 삶은 만만치 않고, 흔들림 없이 서 있기란 참으로 어렵다. 불혹을 넘어가는데도 흔들린다는 건 어쩌면 우리가 딛고 선 세상이 흔들려서인지도 모른다, 고 나는 변명하듯 생각한다. 흔들리는 건 어른만이 아니니까.
가끔 '맥없이 주저앉아 있다가 그림자가 솟구쳐 일어서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풍문으로 전해 듣는다.
요즘 그림자가 일어서...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나면 창문으로 그림자가 올라간다나. 사는 집이 십삼 층인데 자꾸 올라가(p43),
그러다가 정말 그림자를 따라 올라가 떨어져 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날밤의 아버지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내가 그저 난처한 마음에 집어등의 개수만 세고 앉아 있었더라도, 소설가 황정은이 사랑스럽고도 강건하게 축조한 인물인 '무재 씨'가 '은교 씨'에게 단호하게 말해주듯,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마세요.(p10)
그리 말하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그저 어린 딸과 밤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버지는 위안받고 자신의 안녕을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림자 같은 건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각자의 그림자를 등진 채, 우리는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볼 수 있다. 서로의 심장 뛰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일 수 있다. "어둠에 잠겼다가 불빛에 드러났다가 하며 천천히" 나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이렇게 청해볼 수도 있겠지. 무재 씨가 은교 씨에게 청했듯이.
"노래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