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lander Apr 27. 2016

13. 소설가 오한기의 나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여 또 다시 새해를 맞이하게 될 때

  


   단지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집에 들어앉은 건 아니었으니, 매해 무언가를 도모했다. 일은 이어지지 않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엎어지거나 매번 실패했으며 대체로 공상 속에서만 승승장구했다. 머릿속에서는 '한살이라도 젊을 때 (           )나 해볼까, 새해가 밝은 김에 (              )나 해볼까,' 하는 생각들이 물밀듯 흘러들어왔다. .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몽골과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강의를 하고 있거나 남아프리카 선생님들에게 과외를 하고 있었으며, 꽃집에서 플로리스트에게 꽃그림을 배우고 있거나 젊고 어여쁜 처자들과 나란히 앉아 번역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괄호 안에는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 틈입하곤 했다. 그것들의 정체는 차마 고백할 수 없다. 온라인상에서라도 지켜야할 이미지란 게 있으므로. 농담처럼 쾌활하게 말해봤자 조롱받거나 오해받거나, 일 거다. 이를테면 소설가 오한기의 단편 "새해"에서 주인공이 했던 생각,   


  (물구나무도 섰는데) 납치나 해볼까
(스파게티를 먹은 김에) 납치나 해볼까 (p269)
  

  와 본질상 그리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었던 건 이렇게 괄호를 채우며 노는 동안에는 적어도 울적하지 않았고, 아니, 퍽 즐거웠기 때문이다. 


2016 젊은작가상 수상잡품집 수록작: 오한기, <새해>


  얼마 전이었다. 더 늦기 전에 며느리가 본업으로 돌아가길 원하시는 시부가 진지하게 말씀하시길, 

  "예술은 죽어야 인정받는다. 고흐를 봐라."

  나는 그냥 고개만 주왁거렸다. '인정'과 '돈'을 위해서 예술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이렇게 대꾸할 텐데, 나 또한 아이의 교육과 우리의 노후를 아주 가끔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터라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새해"의 주인공처럼, 

  

  돈을 벌지 않으면 영감이 몰아닥치거나 직장이 없으면 글 쓸 시간이 솟아날 것 같았지만 겪고 보니 둘 다 아니었다. 삶은 의미 있지도 않고 무의미하지도 않다. 그동안 내가 깨달은 거라곤 이게 유일했다. (p268)

  이런 처절한 깨달음을 고백할 수도 없었다. 원치 않는 일을 그만두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둘 다 겪고 보니 어떤 삶이 유의미하고 어떤 삶은 무의미하다, 더는 단언할 수 없었다. 시모는 말없이 나를 봤다가 빌려가신다고 책장에서 꺼내 들고 있던 책- 함석헌의 <너 자신을 혁명하라>를 만지작거리시고, 나는 그런 시모의 눈짓과 몸짓을 해석하느라 골치가 아팠다가 도움을 요청하듯 남편을 바라보고, 남편은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다디단 오수에 빠져 있었다. 


  때때로 울적하나 대체로 무탈한 나날이다. "새해"의 주인공처럼 "당나귀가 된 거 같아. 어떻게 하면 다시 거북이가 되지?" 다섯 시간이나 울부짖으면서 남편을 괴롭히다가 남편이 "당신을 달래주느니 차라리 내가 당나귀가 되는 게 낫겠다",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더 이상. 예전에는 그랬다. 한달에 한번씩 손님이 찾아와 온몸에서 피를 쥐어짤 때마다, 나 또한 '당나귀와 거북이' 같은 소리로 울부짖으며 남편을 괴롭혔다. 최근에는 말없이 두통약이나 소화제를 먹고 밥을 배불리 먹는다. 이제 나는 주위 사람들과  


  인간의 언어로 대화도 나눌 수 있고, 직립보행으로 산책도 할 수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직업을 구하고 돈도 벌어 사람 노릇도 할 수 있다.
나는 인간이고, 이걸로 만족한다. (p271)

  하지만 어떤 열망에 사로잡혀 잠 못이루는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나만의 괄호 채우기에 다시 몰두한다. 어느덧 내 괄호는 이런 식으로 채워진다. 

  (드디어 아이가 '심심해, 놀아줘' 타령을 그만뒀는데) 글을 써볼까.

  (이제 나랑 놀아줄 사람도 없는데) 글을 써볼까.

  (힙한 글을 쓰는 할머니를 꿈꾸며) 글을 써볼까... 

  글쓰기에의 열망은 생각보다 억척스럽게 마음을 움켜쥐고 있어 뽑고 뽑아도 돋아난다. 때때로 뿌리째 뽑혀나갔는데도 봄바람에 난데없이 틈입한 씨앗으로 질기게 다시 싹을 틔운다. 그리하여 막무가내로 채워지는 괄호들. 

  (아무도 읽지 않으니) 글을 써볼까.

  (왜 또 써야 하는지 모르겠으나) 글을 써볼까.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글을 써볼까...     


  아마 살아 있는 한, 무언가를 향한 열망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 열망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에는 현실 순응, 안착을 꿈꾸며 내 이상과 타협하려 하겠지. 끊임없이 괄호들을 제시하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엉뚱하고 난감한 괄호들이 내 열망을 더 교묘하게 부추길 터이나.

    

 

매거진의 이전글 12. 소설가 황정은의 은교 씨와 무재 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