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번 흉내내볼까.
"만료된 여권임을 공항에서 알았다. 제주에서 왔는데."
아버지 친구분의 십수년 전 경험담. 인천공항에서 일행이 모두 패닉에 빠지셨다고. 새 여권이 아니라 만료된 여권으로 바꿔 갖고 오신 것을 뒤늦게 아신 것이다. 아니, 여권 가지러 되돌아갈 수도 없는데, 얼마나 황당했는지 몰라. 아버지는 당시 함께 허둥지둥하셨겠으나 이제는 우스운 후일담이 되었다는 듯이 껄껄 웃으셨다. 나는 상상만으로 아찔해서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만 해도 뇌가 새파랐던 나는 내 미래의 뇌도 그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겠으나... 그분 나이에 도달하기도 전에 나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 되고 말았다. 언젠가 동네 마트에서 장을 잔뜩 보곤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었는데, 되돌려받았다. 웃음 섞인 위로와 함께. 저도 종종 그래요. 아, 네... 멋쩍게 웃으며 장바구니에 든 것들을 주섬주섬 돌려놓았다. 너무너무 창피했다. 아니 왜 도서관 카드를 들고 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