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My Ken Loach
That constant humiliation to survive.
If you’re not angry about it, what kind of person are you?
- Ken Loach
그날은 배가 아파 새벽부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내 딴에는 괜찮다고 여겼던 일에 마음 쓰고 있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전날 먹은 음식들을 따져보기도 했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애매한 통증.
나이를 느끼는 127가지 중 하나는 통증을 통해서 몸의 세부를 인식하는 순간이다.
젊었을(?) 때는 그저 두통, 치통, 생리통(복통)으로 퉁쳤고, 십이지장이나 담낭, 췌장의 위치 따위를 헤아리지 않았으며, 난소와 자궁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는데 말이지;;
살수록 더 많은 고민거리들이 생긴다. 그에 따른 괴로움도.
어떤 과제는 채 해결되지 않았는데 새로운 과제가 주어져 망연해지기도 한다.
상황이 그런데도 인생선배들이 곧잘 하는 말.
“얘가 아직 뭘 모르네. 지금 이때가 좋은 거야.”
굳이 괴로움을 통해서 복잡한 인생사를 배우고 싶지는 않은데;; 나이를 느끼게 하는 127가지 중 또 다른 하나.
그렇게 진이 빠질 때로 빠진 날에 이 책을 읽었다.
김현이 짓고 이부록이 그린 <걱정 말고 다녀와>.
그렇다.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와일드한 망상(이겠지)에서 순식간에 벗어나 젊은 시인의 노동하는 일상으로 들어갔다.
집중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는데도 책장이 잘 넘어갔다. 일과 일상, 가족과 지인들에 대한 여러 감정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 때문이었는지도. 가난과 편견, 차별과 혐오를 이기는 삶을 이야기할 때도 서정과 신파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그런 점에서 켄 로치의 영화를 닮았다. 그의 영화처럼 감정(특히 분노와 슬픔)을 격렬하게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그럼에도 여러 번 마음이 흔들렸다.
무방비상태로 있다가 단원고 2학년 6반 이영만학생의 생일을 맞아 시인이 쓴 시를 읽고는 고개를 잔뜩 숙인 채 머리를 커튼 삼아 숨기도 했다.
부제는 ‘켄 로치에게’이다. dear my Ken Loach라고도 적혀 있다.
책 곳곳에서, ‘my’라는 수식어에 담긴 시인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켄 로치의 영화로 이어지는 일상의 편린들을, 그리고
“먹고 사는 일이 인생의 과제처럼 느껴”질 때 그 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도 그 속에 함몰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삶을 발견할 수 있다.
때때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쁜 꿈으로부터 안전한 곳에서 모두가 평온하게 살기를’ 기원하고,
넋 놓고 구름을 보다가 ‘구름에게 배우는 평화란 이토록 전진하는 것’이라 읊조리는
시인의 순수한 감성도.
다니엘 블레이크가 삶이 무너지기 직전인 싱글맘 케이티에게 말했듯이,
“우리에게도 잠시 쉴 바람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내게 ‘잠시 쉴 바람’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언제나 생활이 앞장선다. 문학하는 자라고 해서 뭐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다른 생활을 해야만 문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간의 됨됨이란 생활 속에서 성장하거나 퇴화한다는 것. 동그라미를 의미심장하게 쪼개어 적어 놓은 방학 계획표를 보면서 그 어린 나이에도 자신이 살아온 바를 후회하던 우리가 아닌가.(p46)”
“So we must say something else is possible, another world is possible and necessary.”
- Ken L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