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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Mar 05. 2018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 시간 2

자기만의 방


"여성이 픽션이나 시를 쓰려면 일년에 500파운드의 돈과 문에 자물쇠를 채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이십대 중반,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무렵, 이 유명한 문장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본다. 몇 페이지 읽다 말았다. 책을 대변하는 듯한 이 문장이 절실하지 않았다. 당연한 거 아냐, 하곤 무심하게 덮었나. 게다가 멀리 돌고 돌아 마침표에 도달하는 그녀의 화법을 즐기기엔 아주 성말랐고,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계절 계절 볕 좋은 나날들이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이 문장과 이 책에 대해서라면 단지 두 가지만 마음에 담아뒀을 뿐이었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지탱할 수 있는 경제력, 타인의 방해 없이 진정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공간. 


   이제는 성격이 조금 차분해졌고;; 눈앞에 보이는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책 속에서 만난다. 하지정맥을 염려할 만큼 (하아-)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읽은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 덕에 완독할 수 있었다. 한 문장으로 시작하여 다시 그 문장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렇게 200페이지 가량 에둘러오는데도 초점을 잃지 않은 채 핵심에 닿는, 아니 핵심을 매섭게 꿰뚫어버리는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도 알게 되었다. (혹 섬세한 감성과 냉철한 이성이 공존하는 여성 작가의 계보가 울프로부터 시작되는 건 아닐까. 그녀는 제인 오스틴을 꼽을지도 모르겠으나.) 


    읽고 보니 이 책은 여성 작가 필독서였다. 여성의 독립이 아니라 여성의 글쓰기에 대한 책이었다. 




   글을 읽고 쓸 때 혹은 독서 취향이나 문학적 전범을 결정할 때, 우리가 '당연하게' 행하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가령, 자신의 性을 의식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고유함에만 초점을 맞추는 일. 다른 性이 추구하는 가치나 특성, 주장에 방해받거나 함몰되지 않는 일. 그런 일들이 울프가 죽고 백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자연스럽게 일어나는지. 


   하지만 90년대를 떠올려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도 하다. 아직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성작가들이 대중의 사랑을 막 받기 시작했을 그 무렵, 서사의 규모가 작아지고 지나치게 자신의 내면만을 향한다는 비판이 동시에 들려왔던 걸로 기억한다. 아마도 대부분 남성 평론가/작가들이 낸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아마도 문단 그 자체이지 않았을까. 

   지금은 사라진 서점의 문학 코너에서 한 대학생 커플이 나누던 대화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수강 중이던 문학수업에 대해 신랄하게 평하다가 한 여성작가의 베스트셀러를 들고 살피더니 그걸 쓰레기라 불렀다. 그런 평가조차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어떤 작품도 저만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그 문학적 에고가 몹시 오만해보였다. “가치를 측정하는 사람들의 규정에 복종하는 것은 가장 굴욕적인 태도”이며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 그것만이 중요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가치의 차별이 성차별의 한 면모처럼도 보였다. ‘민족과 민주와 민중이 아니라 개인의 감정과 심리와 일상을 다루는 책은 보잘 것 없다.’ 이런 생각은 그 당시 실제 생활에서 여성의 특성으로 분류되는 것들의 가치 폄하를 내포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와 또 달라졌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실제생활과 문학에서 성의 가치를 나누지 않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그건 “지금까지 아무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그 거대한 방에 횃불을 밝”힌 여성들 덕분이었다. 저 광대한 세상 바깥으로 용감하게 걸어나가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던 어구나 정경을 발견”해낸 그녀들 덕분이었다. “남성처럼 글을 쓰거나 남성과 같은 생활을 하거나 또는 남성으로” 보이려 하지 않고 그저 “여성으로서, 그러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여성으로서, 글을 쓴” 작가들 덕분이었다. 


   여성의 문제를 전면으로 다룬 페미니스트 작가만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글을 쓴 작가들 역시 차갑고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던 차별의 바다를 깨는 도끼였던 것이다. 


   울프가 그러했듯이.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이 카페 구석이든 도서관 열람실이든 몇평 남짓한 자취방이든 식구들 모두 잠들어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는 부엌 식탁이든 어디든 간에, 자기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기를. 연간 500파운드(현재 물가를 따져보면 연간 4천만원은 훌쩍 넘을) 만큼의 돈이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돈 때문에 글을, 그림을, 음악을 포기하지 않게 되기를.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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