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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lander Jan 09. 2019

2. 만화가 김보통

식빵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순간

  간헐적 복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 주 전 불시에 시작된 복통은 괜찮아졌나 싶으면 여지없이 찾아왔다. 외출준비를 하다가도 배신감에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중요한 약속 하나는 불참했고, 하나는 모임 직전에 양해를 구하고 뒤로 미뤘다. 아이는 제발 병원에 좀 가보라고 잔소리하지만 나는 이러다 말겠거니, 귓등으로 흘려듣는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다. 앞으로 20년쯤 뒤의 나와 딸아이의 모습을, 몇 년 전의 엄마와 나를, 그리고 고집스레 병원에 가기를 미루던 엄마의 마음도. 적당한 귀찮음, 적당한 걱정, 적당한 ‘설마하니…’ 뭐 그런 것들이 적당히 뒤섞여 있었을 거다.

  몇 년 전 엄마는 비교적 작은 수술을 받았다. 나는 수술 직전의 폐 사진(의사가 모니터로 보여준 사진을 양해를 구하고 휴대폰으로 찍었다)과 수술자국 사진(엄마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주셨다)을 모두 간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훗날 또 다른 통증을 꾸역꾸역 삼킬지 모를 엄마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엄마는 검사를 몇 년이나 미룬 뒤 수술날짜가 잡힌 당일까지도 망설였다. 얘, 좀 더 미루면 안될까. 정말 정말 중요한 교회 행사가 있는데... 병원 복도에서 엄마와 목소리를 높여 싸울 뻔했다. 수술이 끝나자 엄마도 나도 어찌나 속이 후련해졌던지.

  이제 딸아이가 나를 보며 갑갑하다고 제 가슴을 쳐댄다.

  어쨌거나 번갈아 찾아오는 허기와 복통으로 정신이 사납다. 그래도 먹어보겠다고 밥을 따뜻한 찻물에 만다. 밥상을 나눌 벗으로는 가벼운 에세이가 좋겠다.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꺼내든다. 책에 대해 아는 바는 많지 않았다. 김보통이라는 만화가가 쓴 퇴사 에세이, 아마도 결론은 ‘다행히 아직도 불행하진 않다’ 정도... 식탁에 앉아 아무데나 펼쳐 읽기 시작했다.

  작가는 퇴사 후 다양한 삽질을 진행 중이었다. ‘착실하게 스스로의 존엄을 바닥에 내려’놓는다는 고백에 밥이 넘어가질 않는다.

  “어느 날, 나는 팬티 바람으로 부엌에 서서 식빵에 피어난 곰팡이를 뜯어내고 있었다.”

  이런, 책을 잘못 골랐다. 자칫 목이 멜 것 같다. 이제 <빈곤에 맞서다>라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삶을 톺아보는 작가.

  “앞으로도 지난날처럼 계속해서 문제를 외면하기만 한다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돌아설 곳 없는 빈곤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저를 그만 내려놓고 싶었다. 이러다가 배탈이 나기 전에 먼저 체할 것 같았다. 이윽고 찾아온 문장.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민했다."


  순간 멈칫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 일처럼 기계적으로 독서하는 나날...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고민한 일이 있었던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답을 찾아 독서하던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절실한 독서를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했던 걸까.

  아마도 십여년 전, 작가가 퇴사한 나이에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교보문고에서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만난 날이었을까.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건가?” 그 문장에 붙들려 오래 서 있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나는 다시 읽던 책으로 돌아왔다.

  작가도 당시의 나처럼 일단 직장만 그만두면 삶이 극적으로 바뀔 것을 기대했으나 그런 바람은 결국 허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기적 같은 반전'이나 '대책없이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는 건 '보통의 평범한 사람'에겐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작가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일반적인 자기계발에세이의 고백파트였다면, 이쯤에 벼락처럼 내리꽂는 통찰이 나와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자신을 김보통이라 명명한 이 작가는 보통의 우리처럼 '답'을 찾지 못했다. 번쩍이는 통찰도 얻지 못했다. 다만 아끼며 먹던 식빵을, 그러니까 곰팡이가 꽃처럼 피어난 식빵을 봉투째 쓰레기통에 내던졌다. 그러고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맛있는 것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질테니,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오래간만에 먹는 탕수육 맛은 끝내줬다.”


  생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것 같을 때, 나를 궁지로 몰아놓은 게 세상이고 다른 누군가라고 분노해왔는데 그건 어쩌면 내 자신일지 모른다고 의심해보게 될 때, 스스로 패배한 자가 되어 자신의 존엄을 내려놓게 될 때...

  그때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책을 덮었다. 밥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랫배의 눈치를 살피면서 커피를 내렸다. 그게 오늘의 내 '작은 일'.
  오랜만에 마시는 내 커피 맛도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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