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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Oct 10. 2018

고장

11. 독일에서 병원 가기

März 15 2012 (15.03.2012)


좋은 소식 : '상사가 3월 29일까지 사무실에 없다.'

나쁜 소식 : '내 귀가 계속 비행기에 있는 느낌이다. 회사에 다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중전을 치르고 내 몸상태에 참 무심했던 나는 이렇게 벌을 받는 가보다. 다시 독일 땅에 내려온 지가 언제인데 귓속에선 아직도 비행기를 타고 있다. 비행기가 하늘을 가를 때 나는 바람소리가 이따금씩 들리고, '둥둥'거리는 EDM의 베이스가 소리는 빼고 울림만 머릿속에 남아있다. 덕분에 머리가 함께 울리면서 두통이 온다.

이렇게 표현하기 힘든 증상을 한국어가 서투신 한국인 의사 선생님에게 겨우 설명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독일 이비인후과 의사에게 내 증상을 자세히 써준 종이를 소중히 들고, 주치의 선생님이 추천해주시는 이비인후과에 방문했다.


한국어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이 도시에서 유일무이한 한국인 의사 선생님의 존재 자체에 눈물 나게 감사하면서도, 환자가 병원을 여러 곳 찾아다녀야 하는 시스템에 불만을 토해내면서 도착한 이비인후과는 병원이라기보다 회사 사무실에 가까운 모습이다. 진료실 밖 대기 의자는 가정집 식탁의자 혹은 사무실 의자를 여러 개 줄지어 놓은 것이 전부다.


다행히도 독일 의사 선생님이 영어가 가능하셔서, 나도 최대한 내 증상을 영어로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국어로 설명할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답답했다. 제일 먼저 청력테스트를 하자고 하길래 덜컥 겁을 먹었다. 테스트 결과 정말 청력에 문제가 있으면 어쩌나 하고... 검사 결과 다행히 듣는 데 문제는 없다고 해서 안심했는데, 다시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간호사가 기다리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아닌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가 별다른 설명 없이 갑자기 내 머리를 살짝 고정되도록 잡더니 귀 밑에 주사를 놨다. 아픈 것보다는 갑작스레 주사를 맞아서 당황하고 긴장했다. 나중에서야 독일에서는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가 직접 주사를 놓는 것이 놀라울 일이라는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인 것이 원인이라면서, 약을 먹고 집에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청력테스트는 다음 주에 다시 한번 해봐야겠다고 했다. 독일까지 와서 별 걸 다한다 싶었다. 처방받은 약에 허브 같은 풀이 그려져 있어서 검색해보니,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릴랙스 할 수 있게 해주는 생약 성분이었다. 사실상 약보다는 약초 같은 것에 가까운 것이다. 약도 참 독일스러운 것을 처방해주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의사 선생님의 진단서 덕분에 생긴 3일간의 공짜 휴가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면서 즐겨야지!


돌아온 지 일주일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근데 이렇게 힘든데도 그래도 일주일이 가는구나...

고장 난 귀와 몸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뿐이다.

회사에는 방긋방긋 웃어주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안쏘니'라는 이름의 만화에서 나온 듯한 파란 눈을 가진 프랑스 친구가 새로운 인턴으로 합류했다. 빨리 나아서 최선을 다해 가르쳐줄게.


2018.10.09 화

년, 월, 일로 써 내려가는 날짜의 순서 말고 다른 순서는 생각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완전히 반대로 적어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의 시간들을 다시 들춰보았다. 우리나라와는 정 반대에 가까운 삶의 방식에 익숙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아서일까, 오랜 시간이 지나 버린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순간들이 많다.


브런치에 글을 못 쓰고 개발자로 지내는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독일에서 홈스테이를 했을 때, 호스트이셨던 엘케 할머니와 밤새 얘기했던 일들이 실현되어가는 과정이다. 할머니는 '얼마나 빠르고 느리냐의 문제일 뿐 결국에는 문명사회의 발전 과정은 큰 흐름이 같아서 한국도 지금 유럽이 겪는 문제들과 과거에 겪었던 문제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셨다.


그리고 너는 이곳에 와서 한국이 미래에 겪을 일들을 미리 보고, 겪어보고 가는 것이니 잘 기억해 두라는 얘기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냐에 따라 너의 나라는 유럽처럼 갈 수도 미국처럼 될 수도 중국처럼 될 수도 있다는 얘기... 그리고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그때의 독일 얘기들.


그런 얘기들 중 하나의 방향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과 삶의 줄타기에서 일의 비중을 더 줄이는 방식으로 '52시간 근무'에 대한 논의와 시행이 일부 시작되었다. 그곳에 비하면 지금 여기는 아기 걸음마 단계이지만, 이 또한 속도의 문제일 뿐 결국에는 개인의 시간도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은 물 묻은 잉크처럼 점점 퍼져나갈 것이다.


할머니의 옛날 애기를 들었던 순간에는 아주 먼 얘기가 될 것 같은 변화 중 하나가 눈 앞에서 시작되는 것을 보면서, 소름이 돋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고,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 중 놓쳤던 것들은 없는지 되짚게 된다. 그때 그곳에서의 경험들을 현재 이 곳에서 어떻게 살려내야 할까. 지혜가 필요하다. 이제는 다시 가게 된다면, 더 적극적으로 많은 힌트들을 얻고 돌아와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정말 곧 그렇겠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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