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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ranger Nov 23. 2015

네, 저는  한국인이에요.

5. 한국 아저씨와 일하기

Februar 2012

중국보다도 한국인과 일하는 게 더 어렵게 느껴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두 나라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먼저, 중국은 간단하다.

"Hello, this is Valeo..."
"...뚜뚜뚜..."
"...Germany..휴우..."

그들은 "Hello~"가 들리면, 영어를 못 하는 경우 바로 끊어버린다. 이럴 때 써먹으라고 배워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독일에 오기 전에 몇 개월 간 재밌게 중국어 공부를 했다. 그렇다고 일을 중국어로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고, 중국 여행가서 바보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서 통화전략을 이렇게 바꿨다.

(중국어로)"여보세요"
(중국 회사에서)"여보세요, 블라블라 블라(알아듣는 데 실패함)"
(중국어로)"안녕하세요. 저는 000이고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에요."
"네? 정말요? 거기 독일 아닌가요?"
" 맞아요. 제가 중국어를 잘 못해요. 영어를 하는 사람과 통화하고 싶어요."
" 아아 그래요. 기다려보세요~~"

전략을 바꾸고 나서는 드디어 영어 가능자와 계속 연락하고 업무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는 처음 연락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다.


" 안녕하세요. 독일의 valeo 재무팀입니다. 부품대금 연체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 독일이요?"
" 네, 여기는 독일이고요. 저는 valeo 독일 오피스에서 새로 일하고 있습니다."
" 거기가 독일이고 대금이  연체됐다고요? 근데 독일에서 어떻게 한국말을 하죠? "
(당황스러운 건 알겠다만, 뭐라고 대답하지?!)" 음...저는 한국인이니까 굳이 영어를 하거나 하기보단 한국어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 잠깐만요, 한국인인데 프랑스회사에 있어요? 거긴 독일이고?"
" 네, 저는 한국인이에요."


한국 자동차(우리가 아는 그 회사임.) 아저씨는 분명 국제전화번호를 봤고, 한국말로 독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 좀 당황스러우셨나 보다. 물론, 아저씨가 처음엔 당황하셨을 수는 있지만 이후에 아저씨는 나의 신상을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이 회사에서 하는 일 말고, 독일엔 어쩌다 가게 된 것인지, 독일말을 잘 하는지, 일 한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등등을 자연스럽게 조사하셨다. 나는 어느새 유럽인들과 같은 수준의 사생활 경계 수준을 갖게 된 것인지, 연체대금 얘기를 해야 하는데 내 신상조사를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 일 한지 얼마 안 됐네. 앞으로도 계속 우리랑 일하는 거예요?"
" 네, 저는 6개월 동안 인턴 하는 것이구요. 앞으로  어떨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음, 인턴인데 연체대금 이슈를 관리해요? 신기하네?"


아저씨가 내 나이를 알았고, 내가 학생인데 인턴을 하고 있는 것이며, 6개월 간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우리의 대화는 마치 먼 친척 아저씨에게 예의 있게 대해야 하는 조카 정도의 느낌으로 흘러갔다. 원래의 통화 목적인 연체대금 이슈를 겨우겨우 다시 꺼냈더니


 '아, 그거 내가 다시 확인해볼게. 근데 우린 연체하는 일 없을거야. 왜냐면 우리회사 시스템에는 연체라는 표시가 없거든.'
'네. 그래도 확인하고 답장 좀 부탁드릴게요. 이 회사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계속 연체로 표시되어 있어서요.'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마 그쪽 착오일 거야. 암튼 알겠어요.'


그리고 독일인 동료들은 "네가 모국어로 대화하니까 그들이 좀 더 친절하지? 네가 우리 팀에 와서  다행이야."라고 얘기했다. 아하하하 차라리 한국에 영어로 전화할 걸 그랬다. 더 친절한지 잘 모르겠고 나이를 알게되면 미묘하게 관계가 달라지는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하자니 갑갑해 웃어넘겼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확인해봤는데, 우리회사 시스템에서는 연체 건이  없네요.'라는 내용으로 한국어 답장을 받았다. 덕분에 나는 이제 그와의 메일 내용을 영어로 매번 바꿔서 보스와 동료들에게 포워드 해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반말과 존댓말의 중간인 아저씨의 말투는 무엇이며, 한국 회사를 오래 다녀본 경험이 없으니 원래 신입이나 인턴에게는 원래 저 정도의 말투인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영어였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어쨌거나 좋은 기분은 아니다.


2015.11.23 월

해외에서 한국인 혹은 한국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반갑지 않은 일을 만나게 된다. 번역가나 통역가가 아닌데 (실상은 내 생존에 필요한 현지 외국어도 힘든데ㅠㅠ) 한국인이기 때문에 현지어(또는 영어)로 번역이나 통역할 일이 생긴다. 나의 경우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몇 백명의 사원 중 아시아인이 나 혼자였고, 사무실 안에서 일할 때 한국어를 쓸 일이 한국회사에  전화할 때 말고는 없었다. 한국인 클라이언트들의 한국어 공격만 아니면 현지에서 일하는 데는 영어를 잘하고 독일어를 조금 하면 문제가 없는 행복한 조건이었다.

그런데 훗날 내 업무가 점점 한국과 가교역할이 돼버려서 (한국이 가장 큰 거래처이면서 동시에 문제적...클라이언트라서) 처음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한-영 번역 문제를 만났다.


혹시라도 당신이 해외에서 한국회사와 일해야 하는 유일한 한국인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한국회사에 말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서류와 메일은 이 곳 동료들도 이해할 수 있게 영어로 작성해 달라고!!(please~)

그리고 정말로 번역이나 통역 상황을 피하고 싶고, 당신의 main job이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면 차라리 한국회사와 연락할 때 영어밖에 못하는 사람인 척 아니면 한국말이 서투른 척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당신은 이미 사내 번역/통역가가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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