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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r 31. 2022

일상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꼰대들

민주적이지 않은 민주주의자들

나는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에 입학해 역사교육을 복수 전공했고, 현재는 역사교사로 일하고 있다. 두 학과의 차이는 뚜렷하지만,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실천을 교육의 핵심 가치로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학과의 분위기와 일부 선배 및 교수들의 언행은 결코 그렇지 못했다. 내가 겪었던 일들 중 몇 가지를 적어 보겠다.


신입생들은 관습에 따라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분위기 잡고 있는 선배들 앞에서 선서를 해야 했다. 한 글자라도 틀리면 다시 해야 했고 추운 바깥에서 떨면서 연습했다. 남학생들은 선배들이 부르면 새벽 축구를 나가야 했고 여학생들은 스탠드에 나와 응원을 해야 했다. 한 번은 내가 사정이 생겨 축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 4학년 선배에게 직접 전화를 했더니 그 선배는 건방지다며 화를 내며 끊었고, 곧바로 나 때문에 1학년 신입생 전체가 새벽 집합을 당했으며 학교 운동장을 뛰어야 했다. 2학년 선배는 사정이 있으면 학번이 낮은 선배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예의라고 알려 주었다. 4학년 선배는 이후 임용고사를 앞두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며 동기인 후배에게 교회를 같이 가자고 불러냈다. 효험이 있었는지 그는 시험에 붙었다. 후배들을 불러내 강제로 많은 양의 술을 마시게 하고 함부로 대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도 시험에 붙어 현재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한 교수 수업은 제대로 한 적이 없으며 자신의 인생사와 온갖 자랑을 늘어놓기만 했으며, 원고지에 헌법 전문을 써서 제출하게 했다. 대학원생들을 시켜 오탈자가 있는지 검사했고 틀린 부분이 있는 수강생은 다시 전문을 써내야 했다. 어떤 교수 수업 첫 시간에 성인인 학생들에게 지정석에 앉을 것을 요구했다. 시종일관 고압적인 태도로 수업했으며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면박을 주었다. 수강생 한 명은 지각이 잦다는 이유로 수업에서 쫓겨났다. 대학원에서 만난 교수는 수강생들이 수업 내용을 본인 기준에 맞게 발표하지 못하면 비웃는 얼굴과 고압적인 말투로 깍아내렸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당연히 같을 것이라 전제하며 특정 정치인을 모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꼰대들의 반쪽 짜리 민주주의

 언급된 교수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가 탄탄하며 유명한 학자로서 출판한 책도 많다. 그들은 왕성하게 학술활동을 하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이들이 믿는 사회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은 아마 진심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일상에서는 전혀 민주주의를 실천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습은, 비록 군사정권의 독재와 세뇌를 극복했다는 성과는 있었어도 해당 시기의 억압적 교육으로 만들어진 권위의식까지 떨쳐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자신들이 이루어낸 거시 정치의 민주화 운동 경력이 이후의 모든 언행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학생운동은 민주화를 지향했지만 정작 내부의 운동방식과 위계질서는 군사정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현재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각종 조직에 그대로 이식되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취했으나 일상의 민주주의는 체득하지 못한 세대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를 이끌어왔고 사회경제적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는 게 현재의 한국사회이다. 이들이 사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뒤를 잇게 되고, 군사정권을 경험하지 않은 이후의 세대에서도 지속적으로 꼰대가 생산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최근 들어 MZ세대론이 떠오르면서 변화의 기미가 보이긴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일상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

사실 위에서 언급한 꼰대들 이외에도, 같은 세대임에도 상대가 나이가 어리든, 학번이 낮든 각 개인을 존중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선배와 교수들도 있었다. 오히려 체감상 비율은 민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이 더 많았다. 문제는 목소리 큰 꼰대들이 마치 그것이 정답인 양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방관하거나 숨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서는 나 또한 자유롭지 않다. 꼰대들에게 맞섰을 때 지지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고 괜히 나 하나만 매장되는 선으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것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꼰대들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나섰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루어낸 성과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기분이 썩 유쾌하진 않다. 언제쯤 일상에서 개개인의 입장이 존중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을까. 나와 다른 생각, 다른 입장을 인정하고 내가 틀릴 가능성을 수용하는 태도가 사회의 보편적 지향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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