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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남 Mar 29. 2022

누구 맘대로 친구래?

친구가 아닌 사람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친구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한 의문

나는 육아를 하며 아기들에게 그림책을 종종 읽어준다. 창의성이 부족한 탓에 나이대에 맞는 그림책은 너무 버거워, 줄줄 읽으면 되는 글이 읽는 책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루는 누나에게 선물받은 위인전을 읽어주고 있었다. 그림과 글이 섞인 책인데, 초등교육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체감상 초등학교 1~2학년 아이에게 적절한 수준인 것 같다. 쌍둥이 아기들은 2022년 3월 기준 7개월 차이다. 역사교사의 입장에서 위인전은 특정 인물에 대한 우상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경계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관련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다음 기회에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어찌됐건 내맘대로 책을 읽어주는데, 그날 손이 가는대로 뽑은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부분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거슬리는 표현이 눈에 띄었다. 나폴레옹은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인 코르시카 섬 출신이었는데, 이로 인해 다니던 사관학교에서 각종 따돌림을 받았다. 문제는 이 책에서 나폴레옹을 괴롭히는 학생들을 '친구'라는 용어로 지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면 친구인가

학교에서는 같은 학교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생 모두가 서로 친구라고 생각한다. 같은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각 개인의 대인관계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으로 가까운 사이로 간주하고 사적 친밀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내 물건과 돈을 빼앗거나, 나를 때리고 나를 놀리며 내 존엄성을 침해하는 존재들을 어른들은 같은 학교 친구라고 부른다.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강화와 그에 따른 처벌의 체계화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서로 같은 집단에 속해 있고 아는 사이라는 이유로 가급적 '좋게좋게' 해결하려는 분위기는 분명히 남아있다.

(다만 이러한 지적이 학교가 한참 예전 수준으로 가해자를 옹호하고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학교폭력을 학교 측에서 은폐하고 가해학생의 '빽'을 의식하며 피해학생을 오히려 위축시키는 상황은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제법 강화되었고, 이에 발맞추어 학교현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피해 학생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사안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예외는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 사안의 지속성이나 피해 수준이 과하지 않은 사안의 경우 처벌보다는 재발 방지 및 교육 위주로 대처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건전한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칙이라 생각한다. 문제는 사후 처리 과정에서, 가해자 학생에 대해 처벌 수위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과정에서 교육이나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보다는 같은 학교 '친구'라는 요소가 고려되는 측면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요되는 사적 친밀

학교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는 축소판이다. 한국 사회는 같은 집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적 친밀을 강요한다. 학교에서는 같은 반 학생이면 서로 친하게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회사에서는 별로 대화해본 적도 없는 사람들끼리 같은 부서라는 이유로 회식을 가서 친한 척 술잔을 나눈다. 학급에서 교우관계를 넓게 형성하지 않는(대체로 어른들은 '못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들이 걱정하는 대상이 된다. 회사에서 회식에 자주 빠지고 흥겨운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인격적 결함이 있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당한다. 농담이나 업무상 지도를 가장한 성희롱과 갑질을 당해도 문제제기를 하면 같은 회사 사람끼리 너무 야박하게 군다고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


모두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나에게 잘못을 해도 '친구'라면서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 그가 속한 집단의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될까. 조직 구성원 개개인이 모두 친구가 될 필요는 없다. 집단의 결속력과 구성원들의 소속감은 강요된 사적 관계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확고한 목표의식과 서로에 대한 존중이 제공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역사 속의 시민혁명들은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아니라, 사회의 변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익명의 대중이 힘을 합쳐  일으킨 것이다.  


한국사회도 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속도감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각 개인에 대한 존중은 사회와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여러 집단들이 성공하기 위한 기본 공식이다. 존중은 각자의 사적 관계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편견을 가지고 개입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우리는 친구가 아니다. 친구가 아닌 사람끼리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친구

#대인관계

#존중

#자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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