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프로그램 <솔로 지옥>을 통해 잠시 대세가 되었던 패션 유튜버 송지아는 짝퉁 착용 논란으로 일단은 가십의 세계에서 퇴출되었다. 그녀를 비난하는 대중들은 배신감을 토로한다. 정의의 사도 행세를 하며 신상을 캐고 하나라도 더 헐뜯을 소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송지아 사태의 본질은 이전까지 여러 연예인이 겪었던 마녀사냥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녀는 악독한 강력범죄자도 아니고 국가경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 경제사범도 아니다. 학교폭력 가해자 출신도 아니며 백화점에서 직원을 무릎 꿇린 적도 없다. 그녀의 잘못은 대중이 갖지 못한 화려한 삶을 누려왔고 수려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은, 별다른 트집거리가 없을 때는 환호를 받지만 작은 빌미만 생기면 이번 사례와 같이 가차 없이 린치를 당한다. 대중이 잘 나가는 유명인과 같은 수준이 되는 방법은, 그를 따라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그를 끌어내리는 것이 훨씬 손쉽기 때문이다. 송지아는 물론 패션사업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받는 비난 수준은 질투 이외에 설명할 개념이 없다. 굳이 덧붙인다면 일부 행동력 있는 소수가 댓글 생산으로 논란을 주도하고 기삿거리가 필요한 황색언론들이 이를 확대 재생산하며 그녀를 맹수들이 들끓는 콜로세움에 세우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겠다. 대중은 악플 세례에 쓰러진 송지아에게 데스를 외치며 쾌감에 빠져든다.
단순히 큰 잘못을 했으니 대중의 비난을 받아야 한다면, 연예인보다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 법조인 등에 대한 분노가 훨씬 장기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폭발력은 매우 제한적이며 갖은 욕을 먹으면서도 부패한 기득권층의 자리는 위협받지 않는다. 이들(정치인, 기업인)의 삶은 당장 보기에는 화려한 일상보다 정쟁과 암투 위주로 중계되기 때문이다.
엄청난 액수의 검은돈이 오가지만 그들이 누리는 일상의 부귀영화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중들이 혀를 찰 지언정 질투의 대상이 될 일은 없다. 대중은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의지보다 타인에 대한 질투를 더 큰 원동력으로 삼는다. 부패한 기득권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비리와 부조리를 체계적으로 파헤쳐서 전달하는 저널리즘보다 그들의 부귀영화와 화려한 일상을 시각적 이미지로 충실히 묘사한 후 적당한 의혹을 양념으로 버무려 주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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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
"우리가 다른 사람이 실패하길 바라고 그들의 실수에 대해 험담하길 즐기는 건 결국 무척이나 슬픈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주목받지 못해 화가 나 있고, 그래서 우리 몫을 빼앗아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단죄함으로써 위안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좌절된 야망이 우리를 실패자로, 다른 이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으로 만든다." (알랭 드 보통, <뉴스의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