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범대의 떡상과 백수 양성소 입소
내가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고 대입을 치른 2000년대 초반 사범대는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의대와 약대 정도를 제외하면 최고로 인기가 높았고, 메가스터디를 비롯한 학원가 배치표에서도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학원 선생님은 목표로 삼아야 할 대학을 나열했는데, 서울 지역 명문대만 언급되는 와중에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국립대 국어교육과, 영어교육과, 수학교육과를 커트라인에 넣어주었다. 이는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직후 공무원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와중에, 김대중 정부의 교사 정년 단축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몇 년 간 교사 임용 선발 인원이 크게 늘면서 미래 전망이 아주 밝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쩌다보니 사범대에 진학했다. 특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을 깊게 하진 않았다. 평소 내가 모의고사 성적이 그런대로 나왔고 친구들에게 공부 관련 질문을 많이 받으면서 가르쳐주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딱 거기까지였다. 딱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로망이 있지도 않았고 심도 깊은 진로활동 끝에 얻은 결론도 아니었다. 아직 수능성적 위주 전형이 대입의 거의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그냥 성적 맞춰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갔다. 교대라는 다른 선택지도 있었지만, 나에게 예체능을 배우게 될 아이들의 재능이 말살되는 비극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임용고사라는 백수 양성 과정의 실체를 미리 제대로 알았더라면 사범대에 진학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우물 안에 방치된 학생들
개인적 경험으로는 부실한 부분이 많이 느껴졌지만, 사범대에서는 나름대로 교사가 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제공한다. 문제는 그것밖에 없다는 거다. 다른 진로를 고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다른 직업군 탐색을 위한 그 어떠한 커리큘럼도 제공되지 않았다. 재학생들도 그저 적당히 나름의 학교생활을 즐기다 4학년이 되면 임용고사 준비를 하는 것 이상의 준비를 하지 않았다. 학교는 학생들을 방치했고, 학생들은 앞날에 대한 두려움은 있었으나 딱히 다른 길을 알아볼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 눈에 보이는 선배들, 동기들 모두 그렇게 하고 있으니 딱히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는, 혹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도 찾기 어려웠다. 다른 일반 학과 학생들이 취업 준비를 위해 온갖 스펙을 쌓고 대외 활동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동안, 대부분의 사범대 학생들은 말 그대로 그냥 있었다. 토익 시험조차 응시 경험이 있는 경우를 찾기 어려웠다. 앞날이 막막하다는 느낌조차 막연했다.
갑자기 찾아온 임용 절벽
임용고사 선발 체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집중적으로 선발인원이 늘어나는 황금기와 그 뒤를 잇는 암흑기가 계속 교차된다는 것이다. 기존 교사들의 퇴직이나 교육과정 변화에 따른 교과 수요 변화가 선발 인원을 결정하는데, 수요가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경우 뒷 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왕창 뽑아버리고, 그 직후에 졸업하는 세대는 비슷한 실력을 갖추고도 선발 인원 자체가 없거나 크게 줄어 심각한 기회 박탈을 당한다. 학교 현장에서는 특정 세대의 교사가 몰리거나 크게 부족한 부작용도 발생한다. 매우 불합리한 시스템이며 좀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선발 인원을 조절해야 한다.
여하튼 이러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 상황인데, 내가 시험을 치를 수 있는 시기 직전, 정년 단축으로 인해 대거 퇴직한 빈 자리가 앞 세대의 졸업생들에 의해 채워져 버렸다. 역사 교과의 경우 학교당 매년 졸업생이 매년 30명 내외로 배출되고, 전국적인 응시생은 3000~4000명 가량인 시험인데, 내가 응시한 첫해에 전국에서 50명 정도를 선발했다. 학과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대체로 비슷한 상황이었고, 그 해에 졸업하는 학생 중 단 한명도 합격하지 못한 학과도 있었다. 이런 암흑기가 몇 년간 지속되었고, 학과의 위상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최근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시기가 맞물리면서 내가 시험을 치를 때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학령 인구 감소에 따라 장기적으로는 선발 인원 축소 추세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교사가 되지 못한 사범대 졸업생의 고민
임용고사는 졸업예정자인 4학년부터 응시가능하며, 1년에 1회 실시된다. 나는 졸업 후 3년 간 임고생이란 이름으로 백수 생활을 하며, 사범대생이 교사가 되지 못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고시낭인이 되는지 느꼈다. 일단 4학년 때는 별다른 위기감이 없다. 극소수의 합격하는 동기들이 부럽긴 하지만 어차피 나도 너도 모두 떨어지기 때문이다. 시험삼아 쳐본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렇게 재수를 한다. 누군가는 노량진으로, 누군가는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누군가는 학교 근처 자취방으로 간다. 이때부터는 좀더 본격적으로 준비하지만, 역시 주변에 넘치는 장수생들을 보면서 나는 아직 괜찮으며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열심히 하지 않는 생활이 지속된다.
그러다 재수, 삼수를 실패한다. 주변 친구들이 슬슬 합격하기 시작하면서 식은땀이 난다. 이 시험을 계속 치는 것이 맞는 것인지, 나는 합격할 수 있을지 걱정되지만 이 시험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시험 준비만 하면서 나이만 들었고 스펙은 커녕 취업 준비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 내세울 수 있는 인생 경험도 없다. 영어조차 손을 놓은지 오래되어 다시 시작하기 겁이 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먼저 합격한 주변 사람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실패자가 되는 느낌 때문이다. 나는 다행히 합격했지만, 아마 그러지 못했다면 다른 분야로 전환하지 못하고 시험 준비만 하며 늙고 있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름대로 번듯한 직장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의 소식은 어떻게든 들린다. 하지만 주변의 사범대 출신들이 다른 분야로 취업했다는 소식은 거의 듣지 못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아직 임용고사 준비를 하고 있거나, 세간의 인식 수준에서 교사보다 낮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있기 때문에 굳이 알리지 않은 것이다. 여전히 전국의 수많은 사범대에서는 매년 수천 명의 임용고사 불합격생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처음부터 민간 기업 취업 준비를 해온 사람들과 제대로 경쟁해서 자리를 잡고, 노후 대비를 할 수 있을까.
사범대 진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사범대의 위상이 많이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곳은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다. 하지만 현재의 사범대는 이들이 갖춘 재능과 노력을 제대로 대접해줄 수 없다. 글의 초입부에 이야기했지만, 교사라고 해서 특별히 깊이 있는 성찰 끝에 나아가는 진로는 아니다. 교사로서의 정체성은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사범대 진학을 꿈꾸는 이에게, 이 직업이 당장은 나를 위한 천직 같겠지만 막상 험난한 경쟁을 마주하는 순간 그 신념은 흔들릴 것이다. 물론 공교육 시스템 유지를 위해서 사범대는 유지되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졸업생을 배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글을 보는 사람들 가운데 사범대 진학을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좀더 이곳을 둘러싼 현실을 충실히 살펴보고 결정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