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들을 통해 사범대 진학 시 처할 수 있는 상황들을 살펴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범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굳이 사범대를 선택했다면, 최선을 다해 미래를 준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시리즈의 글을 읽어주기 바란다. 이 글의 내용은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한 것, 그리고 내가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 것인지 돌이켜보는 것이다. 나는 이미 말했다시피 지극히 일반적인 사범대생 출신이고, 임용고사 이외의 다른 진로를 준비해 본 적은 없으니, 세상 물정을 잘 모르고 한 이야기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면 된다.
사범대 교과 선택 구조
기어코 사범대 진학을 결정했을 때, 성적이 된다면 대체로 국어, 영어, 수학 교육과(이하 국영수)를 고려하게 된다. 매년 일정 수준 이상의 선발 인원이 보장되어있기 때문이다. 사회 계열과 과학 계열 및 임용 선발 인원이 존재하는 非수능 교과의 교육과는, 국영수에 지원하기에는 성적이 부족하다고 여길 때 차선책으로 고려된다. 현재 사실상 교사를 선발하지 않는 학과(독어교육과, 불어교육과, 환경교육과 등)는 일단 사범대 입학 후 어떻게든 교사를 선발하는 학과를 복수전공하여 임용고사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는 구조이다.
나의 사범대 학과 선택
나는 일반사회교육과를 졸업했지만 대입을 준비할 때는 국어교육과 진학을 희망했다. 내가 국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이유 때문이었다. 문법으로 나를 괴롭힌 영어는 굳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수능성적이 충분했다면 국어교육과에 지원했겠지만, 내 성적은 애매했고 배치표보다 위험한 변수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선책으로 다른 학과를 고르게 되는데, 나는 사회와 역사 교과를 가장 좋아했고, 그 당시에는 사회 교과가 내 적성에 더 맞는 것 같아 일반사회교육과를 선택했다.
임용 티오보다는 적성대로
결과적으로 나는 이 선택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한다. 국어교육과를 진학했으면 나는 과연 임용고사에 합격했을지 자신이 없다. 나는 영어학습에서 발음 기호를 잘 이해하지 못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한계를 겪었다. 음운론이나 전근대 국어와 같은 공부 내용을 보며, 나는 저런 것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전공 과목을 결정할 당시 국어도 선택이 가능했지만 이 과목으로 나는 밥벌이 경쟁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고, 깊고 넓게 공부해도 막막함보다는 흥미를 느끼고 끈기를 발휘하게 해주었던 역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사회와 역사 중 시험 형태의 경쟁에서 내가 더 경쟁력이 있는 쪽은 역사라고 판단하였고 나는 역사교사가 되었다.
아무리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궤도에 올라 사회에서 생존이 가능하려면 매우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무리 자신 있다고 해도 그 분야를 깊게 파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벽에 부딪힌다. 나 역시 임용고사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운 내용으로 인해 깊은 고통을 겪었고 이를 극복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좋아하는 분야도 이럴진데 관심도 없는 분야라면 이를 극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일단 경쟁력을 갖추려면 해당 교과에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국영수가 많이 뽑으니 좀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선발인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경쟁률이다. 이 교과에는, 교직이수와 교육대학원이라는 제도(교육대학원을 통한 교사자격증 발급은 곧 중단될 예정이다)를 통해 非사범대 출신 응시생이 다수 배출되기 때문에 막상 경쟁률을 까보면 특별히 더 나은 상황도 아니다. 다른 교과에도 물론 非시밤대 출신이 있으나, 국영수는 교직이수가 허용되는 범용성 넓은 학과가 많아 그 배출되는 양적 차이가 매우 크다.
먹고 살기 위한 시험 공부도 결국 해당 분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뭔가 이해가 되지 않던 개념을 알게 됐을 때, 어떤 인물이나 사건을 평가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색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짜릿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쩔 수 없었지만, 공부하면서 지식을 획득하는 그 자체에서 만족스런 기분을 느꼈다. 아마 훈민정음 표기법이나 영어 발음기호를 이해해야 했다면 나는 아직도 고시낭인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임용고사의 세계로 들어온다면,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재밌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가기 바란다.
교사를 선발하지 않는 학과에 대한 고민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아예 이제는 교사를 선발하지 않는 학과들이 있고 이곳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다른 학과 복수전공을 통해 임용고사에 도전하고 있다. 교사 선발이 없으니 자연스레 존폐논란도 있으나, 일단 나는 존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해당 교과에 대한 수요는 새롭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다양한 역량을 지닌 교사의 존재는 학교현장에서 색다른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환경교육에 대한 정식교육을 받은 교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학교 현장에서 해당 이슈에 대한 접근 수준 자체가 다를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학과의 존재에 대한 당위성 부여와는 별개로 해당 학과에 진학하는 것은 학생의 미래에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임은 분명하다. 대학을 갈 전체 학생 숫자도 한정되어 있고 학생 수는 점점 줄어드는데 사범대가 지금과 같은 선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다음 글에서 언급하겠지만, 나는 사범대생들이 미래의 선택권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사범대를 벗어난 영역에서 복수전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교사를 선발하지 않는 사범대 학과에 진학을 했다면, 일단 임용고사 응시를 위해 다른 사범대 학과 복수전공이 필수적이다. 이는 임용고사를 벗어난 다른 진로에 대한 가능성을 매우 위축시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범대 내 복수전공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선택하면, 사실상 임용고사 응시 기회가 없는 것이기에 사범대를 선택한 의미가 없어진다. 참 어려운 고민이다. 이러한 학과를 선택한다면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