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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싸이트 Oct 07. 2023

충고를 듣는 고충

직원들이 싫어해요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중에 반드시 스승이 있다고 했다. 동의한다. 언뜻 못나 보이는 사람도 잘하는 일이 있다.


'스승'은 우리가 사회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상하 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후배에게서도 배울 점이 있고 선배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지 않다.


회사에서는 직급과 연차로 상하 관계가 정해진다. 이 상하 관계에는 능력보다 '경험'이라는 키워드에 무게가 실려 있다.


경험은 충고를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김부장은 오랜 기간 쌓은 경험으로 이대리에게 충고를 함다. 자신이 20년 동안 해온 일을 이어 맡은 이대리가 어떤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는지 미리 조언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방법을 알려준다.


이런 충고는 매우 유용하지만 때로는 새로운 시도를 방해하는 양날의검이 된다.


가령 김부장은 거래선 관리를 해온 지난 20년 동안 담당자와 매주 술자리를 가지며 호형호제 관계를 구축했다. 공문을 띄워야 할 일을 전화 한 통으로 무마시킬 수 있는 친분 관계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 것이 그가 아는 거래선 관리의 기본이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대리 생각은 다르다. 업무적으로 두 회사가 시너지를 내고 서로의 회사에 가장 큰 이익을 안겨주는 것이 거래선 관리라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 술자리는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 대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불투명한 업무를 발생시키는 잠재적 위험요소라고 믿는다.


김부장 눈에는 이대리가 업무의 기본을 간과하는 것 같아 걱정이 돼 충고를 쏟아 낸다. "거래선 관리는 관계가 기본이야. 너 계속 그렇게 술자리 피해 다니면 나중에 문제 생겼을 때 절대 해결을 못한다니까"와 같이 강요를 한 스푼 섞는다.


이처럼 충고를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경험은, 다양한 가능성을 제약하기도 한다. 경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 아니며 모든 상황을 아우를 수 없다. 강요가 더해지면 상황을 악화시킨다.


충고가 더 나쁜 형태로 작용하는 케이스는 고착화된 상하관계에서 비롯한다. 상하관계가 충고를 하는 자와 듣는 자를 결정한다. 어떤 영역에서는 이대리의 전문성과 안목이 김부장보다 뛰어날 수도 있음에도 말이다.


예를 들어 SNS에 익숙한 이대리는 젊은 세대에게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트렌디한 게시물과 사진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있다. 김부장은 SNS 계정조차 없는 문외한이지만, 이대리가 작성한 게시물의 말투가 너무 자신감 넘치고 캐주얼 해 맘에 들지 않는다.


"요새 이게 핫하다는 건 다 알겠는데, 그래도 고객을 대상으로 나가는 메시지는 늘 공손하고 겸손해야지. 사진도 어떤 가치를 담고 있는지 모르겠어. 이미지에는 확실한 브랜드 가치가 반영돼야 하는데, 회사 로고도 없잖아"로 시작하는 충고를 한바탕 쏟아낸다.


이 상황에서는 이대리가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대리는 김부장의 말이 답답하지만 그가 상사이기 때문에 밀고 올라오는 말을 목구멍 밑으로 꿀떡꿀떡 삼켜 낸다. 적당히 타협을 보고 이도 저도 아닌 게시물을 발행한다. 그렇게 김부장은 여전히 충고자의 지위를 지켜내고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최악의 충고는 업무 영역을 넘어서거나 경험의 유무와 관계없는 영역에서 벌어진다. 김부장은 지금껏 이대리를 리드하며 여러 가지 업무에서 충고를 해왔기 때문에 자신이 '윗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업무적으로만 유효한 이 인식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김부장은 이대리가 나이가 차도록 결혼을 하지 않는 게 걱정된다. 후배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이대리를 억지로 끌고 술집으로 가 결혼이란 무엇인가, 좋은 배우자의 조건 등에 대해 줄곧 떠들기 시작한다. 이대리는 비혼주의자인데도 말이다.


나아가 내 집 마련, 부동산, 금융투자 등에 대한 주제로 넘어가 융단폭격을 시작한다. 정작 자신은 20년 전 청약에 당첨돼 신축 아파트에 입주한 게 마지막 부동산 거래였음에도 말이다.


충고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자신이 우월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싶어 한다. 남에게 영향을 미치고 존중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신도 잘 모르는 일에 대해서 쉽사리 입을 연다.  


스스로는 한 회사에서만 근무했으면서 이직을 하려는 후배에게 그 회사 별로 안 좋다는 말을 한다. 다른 회사 가봐야 다 똑같다고 마치 경험한 것처럼 떠든다.


사업을 하겠다는 후배에게 퇴사했던 과거 동료들의 이름들을 늘어놓으며 모두가 망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이 사업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말한다.


주식 투자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일장 연설을 쏟아낸다. 그래서 어디 투자를 하고 있냐는 질문에 자신은 안 한다고 답한다. 상대방이 주식 투자로 집을 샀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과거에는 충고가 자연스러웠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흔히 '사'자가 붙어있는 직업을 제외하고는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과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묻고 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환경이 익숙하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견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업계관계자만이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클릭 한 번으로 찾아낼 수 있다. 관심만 있다면 젊은 사람들도 전문성을 쉽게 쌓아 올릴 수 있다.


이제는 어디서 들은 이야기,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 전문성이 높지 않은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스스로를 위해 더 나은 시대다. 설령 어떤 경험을 했더라도 그것이 전부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았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도 충고를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우리가 분명 잘 아는 분야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모든 분야에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를 뛰어넘을 만큼 우월하지 않다는 점이다. 상대방을 얕잡아 보지 말자. 그들에게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


누군가의 조언과 충고에 민감한 사람들 역시 남의 말에 너무 휘둘릴 필요가 없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자마다 의견을 쏟아내는 사람들의 깊이보다 스스로 고민해 온 시간과 고찰의 깊이를 믿어야 한다.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느끼면 제대로 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거나 스스로 학습을 더 하면 될 일이다.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선택에 대한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 일이 잘 안 풀리고 나서 충고를 해준 사람을 찾아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 인생을 남에게 맡기지 말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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