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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싸이트 Oct 14. 2023

일 때문에 불안하신가요

박과장은 불안하다. 잠들기 전 스마트폰으로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말에는 노트북을 켜 이미 읽었던 이메일을 다시 읽는다. 놓친 업무는 없는지, 제대로 일을 했는지 살펴본다. 저녁 늦은 시간 혹시라도 팀장에게 연락이 와있을까 카톡을 확인한다. 심지어 회사에 출근해 일을 하면서도 불안하다. 이미 완료한 업무에서도 무언가 실수는 없었는지 살핀다. 


불안을 달고 사는 박과장은 어쩌다 찾아오는 평온한 나날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평온함을 감지하는 AI 시스템이라는 있는 듯 불안감이 엄습한다.




직장인들에게 불안 요소는 도처에 널려 있다. 불안할 일이 너무 많아 불안하지 않으면 불안한 수준이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실력과 경험에 비해 해내야 할 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예상하기 어려운 변수가 튀어나오고, 상사에게 질책을 받을까 불안하다. 심지어 혼날 시기가 다가온 것 같아 불안하다. 


불안은 간장감과 두려움을 불러오고 합리적인 생각을 방해한다. 뇌가 위기를 감지하면 창의적인 사고나 소화기관 같은 곳으로 가는 에너지 밸브를 잠근다. 생존을 위해 도망치는데 필요한 근육으로 에너지 밸브를 활짝 연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른다'는 말은 상당히 과학적인 말인 셈이다. 이런 상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고를 방해해 악순환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불안 요소는 빠르게 없애는 게 좋다. 모든 불안 요소를 제거할 수는 없지만 통제할 수 있는 상황도 많다.


불안이 엄습하는 대표적인 상황은 꼭 해야 하는 일을 묵혀뒀을 때다. 너무 바빠서 시간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당장 하기 귀찮을 때, 그리고 너무 어려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할 때 다가온다.


이중에서도 특히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어려운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을 옥죄어 온다. 뭘 해야 할지를 모르니 리서치를 한답시고 인터넷을 뒤지며 시간을 흘려보내게 된다. 이렇게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면 더욱 상황이 나빠진다. 일단 바쁘게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을 하다 "그거 잘 진행되고 있어?"라는 말에 정신을 차려보면 감당할 수 없는 시간대에 진입해 있다.


이런 업무는 당장 시작해야 한다. 업무를 진행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전혀 모르는 게 문제라면 이 상황부터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해외 전시 참가를 준비하라는 일이 주어지면, 경험이 있는 사람이나 대행사를 찾아 묻는 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노하우가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공부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 


아무 준비가 안되었더라도 일단 경험이 있는 이들과 만나 "해외 전시에 참가하려 한다"는 말을 하면 수많은 질문을 들을 수 있다. 그 안에 해야 할 일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


그들은 어떤 제품과 서비스를 출품할 것인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지, 어떤 이미지를 부각하고 싶은지, 전시를 보여주고 싶은 고객은 누구인지, 부스 규모를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전시 주관사와 접촉해 부스를 부킹해 뒀는지, 규모별 대략적인 예산이 얼마가 필요한지, 홍보는 어떻게 할 생각인지, 부스 콘셉트는 생각해 봤는지, 부스 공사는 현지 회사를 활용할 건지, 현지어에 능통한 직원이 부스에 상주하며 고객 응대를 할 수 있는지, 몇 명을 상주시킬 것인지, 상주 인원을 교육할 전문인력과 교육 프로그램은 있는지, 제품 운송은 어떻게 할 건지 등 수많은 질문을 쏟아낼 것이다.


당신이 곧바로 답변하지 못하는 것들이 준비할 일의 핵심이다. 이제 항목들을 언제까지 준비해야 일을 진행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된다.


사무실에 돌아와 모든 항목들을 나열해 일의 순서를 배치하고, 각 항목마다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면 할 일과 순서를 정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스스로 해결하거나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은 반드시 분류해둬야 한다. 이것들은 스스로 업무 품질과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 시간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야 하니 별표를 쳐두자. 


이렇게 할 일의 목록을 세부적으로 나누고 시간을 정하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불안을 상당히 해결할 수 있다. 두려움에 잠식되고 불안함에 잠 못 이루지 않아도 된다. 피할 수 없고 결국에는 일어날 일은 미리 제거할수록 편안해진다. 절대 묵혀두면 안 된다. 다른 잡일을 하면서 놀지 않고 있다는 느낌으로 위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불안을 느끼는 또 다른 순간은 처리해야 할 일은 넘쳐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없을 때다. 시간에 쫓겨 눈에 보이는 일에 매달리다 보면 언제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관리가 되지 않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잊고 있던 일들이 독촉장을 들고 찾아온다. 그때마다 "아 맞다!"를 시전하고 있다면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런 상황에 좌절하며 회사를 욕하거나 업무 관리를 해주지 못한 팀장을 비난하지 말고, 모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보자. 아무리 의지가 충만하더라도 우리는 물리적인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일할 수 없다.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한 가지를 꼽아보자. 그 일은 팀을 넘어 큰 개념의 조직 관점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업무이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일 것이다. 개인의 관점에서는 커리어에서 중요한 일일 것이며, 이력서 상단에 적을만한 업무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업무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 안 해도 되지만 하면 더 좋은 일, 옆팀의 누군가가 계속해서 요청하는 일, 별 의미 없이 팀장이 툭툭 뱉어내는 일을 하느라 시간이 부족하다면 업무의 경중을 따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미결인 상황으로 방치해 두라는 말이 아니라 업무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할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상사의 요청을 무조건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자. 회의 중 요구받는 모든 일에 반사적으로 알겠다고 하지 말자. 가장 중요한 일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이야기하자.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데드라인을 먼저 입밖에 내야 한다. 숫자는 선수를 치는 사람이 우위를 먹고 들어간다. 상대방이 언제까지 해달라는 말을 하기 전에 먼저 언제까지 할 수 있다고 일정을 내뱉어야 한다.




불안감의 주요 원인은 우리의 정신이 회사 일에 과도하게 묶여 있기 때문이다. 해내야 할 일에 압도돼 파묻히는 대신, 눈에 보이도록 펼쳐 놓으면 막연함에서 오는 두려움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 과거를 되짚으며 불안의 근원을 찾아 뿌리 뽑아내겠다고 집착하지도 말자. 이미 벌어진 일은 바뀌지 않는다. 아쉬워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부터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 오늘은 그저 오늘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된다.


오늘 할 일을 마쳤다면 퇴근하고 나서는 더 이상 일을 생각하지 말자. 미리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 없다. 이메일도 업무 카톡방도 들여다볼 필요 없다. 내일 할 일은 쿨하게 내일의 내게 전가하자. 오늘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발전한 내가 해결해 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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