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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싸이트 Feb 18. 2023

라인 하나 없이 승진을 하겠어?

회사 내 마피아의 탄생


무리 짓기 본능


인류는 수백만 년 전 무리를 지어 동물을 사냥하는 게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사냥을 할 때보다 열댓 명이 동시에 창을 던지고 활을 쏘니 훨씬 수월했다. 집단의 힘이 생기니 먹이를 빼앗으려 기웃거리던 인간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떤 집단에 속할지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당연히 힘이 세고 사냥 기술이 뛰어난 리더가 있는 쪽을 택하도록 자연스레 학습이 됐다.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지만, 조상들이 수백 만년 전 뇌에 심어준 무리 짓기 본능을 아직도 사용한다. 여전히 생존에 유리해서다.    



라인의 결성


가장 가까운 예시가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회사 안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무리 짓기'를 한다.   


'라인'이라 불리는 이 작은 집단은 고위 임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가 아끼는 후배, 의 후배, 의 후배, 의 후배로 구성된다. 고위 임원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인사권이나 평가권을 아끼는 후배의 승진, 부서배치, 보상에 활용한다. 엄청난 혜택이 된다.


소수가 재화를 독식하면 문제가 생긴다. 무리 외 사람들은 실력이 있어도 자원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된다. 그럼에도 이 무리가 가진 권한과 막강한 힘 앞에서는 불만을 표하기 어렵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혜택이 있기에 '라인'을 타고 싶은 사람은 많다. 그런데 모두가 승선할 수는 없다. 나눠 먹을 떡이 몇 없어서다. 팀장자리, 임원 자리 수는 후보자들 수보다 적다. 적당히 친분을 다져 놓는 정도로는 '정회원' 등급이 안 된다. 좀 더 끈끈한 사이가 돼야 한다.  



라인은 아무나 타나      


라인 가입은 내가 결정하지 못 한다. 입을 벌리고 있는 수 많은 새끼 새 중에 누구 입에 먹이를 넣어줄지는 어미새가 정한다. 권력을 가진자다. 내가 할 수 있는건, 최대한 잘 보이는 곳에서 입을 벌리고 삐약 삐약 소리를 내는 것 까지다.


라인 구성원이 되려면 관계도를 잘 살펴봐야 한다. 라인은 패권의 대물림을 위한 것이기에 적당한 연차 터울이 기본이다. 이를테면 사장 - 전무 - 부장 - 과장과 같이 간격이 띄엄 띄엄 있어야 한다. 부장 1년 차 - 차장 말년차처럼 짬 차이가 없는 라인은 잘 못 설정된 구도다. 부장이 멋모르고 차장을 챙겨주려 하다간 자칫 후배에게 자리를 뺏길 수 있다.


만약 당신과 1~2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선배가 실세고, 그의 뒤를 봐주는 임원들이 있다면 그의 라인을 잡겠다며 허송세월하지 말길 바란다.


다음으로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권력자가 내게 혜택을 줄 때는 이유가 있다. 그에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매출을 팡팡 터뜨려 줘서 임원의 실적 목표를 채워준다던지, CEO에게 존재감을 높여줄 신사업 기획 능력이 있다던지, 경쟁자의 약점을 찾아오는 정보력이 있다던지 하는 식이다. 뭐라도 '실력'으로 불러줄 만한 특출남이 있어야 가입이 쉽다. 하지만 이는 선호 조건이지 필수조건은 아니다. 종종 실력 없이도 라인에 가입해 있는 이들이 있다.


필수조건은 신뢰다.


실세 입장에서, 기껏 키워줬더니 힘이 생겼다고 나를 앞지르려 하거나, 반기를 들 수 있는 '새끼 호랑이'는 절대 키워선 안된다. 혹시라도 내가 준 정보를 다른 라인에 가서 흘리는 빅마우스도 안 된다. 내 입지가 잠시 주춤한다고 헌신짝 버리듯 다른 실세에게 빌붙을 수 있는 자도 라인에 가입시켜서는 안 된다.  


어떻게 신뢰도를 측정할 수 있을까? 그동안 행실을 보며 신뢰도를 매겨보지만, 이 것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이 맘먹고 충성하는 척 연기를 하면 진심과 구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게 된다.


대표적인 공통분모 아이템은 '학연'과 '지연'이다. 케묵은 이야기지만, 클래식에는 이유가 있다. 학연, 지연이 담보하는 건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아니다. 실질적인 안전장치 기능을 한다.  


서로의 인맥이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학연 관계에서 누군가 배신을 하면 동문 사이에 말이 돈다. 배신자는 해당 커뮤니티에서 매장될 수 있다. 지연 역시 그렇다. 고향은 당사자들의 인맥을 넘어 부모 사회까지를 포함한다. 공통분모는 많을수록 하체 근력처럼 안정감을 준다. 이를테면 1)동향에 2)같은 학교 출신이라거나, 심지어 3)같은 과 출신이면서 4)고등학교 까지 동문이거나 하는 식이면 더 많은 프리미엄이 된다.


권력자 입장에서도 동문을 챙겨주면 얻는게 더 많아진다. "저 사람은 우리를 동지로 생각하고 챙겨주는 구나" 하는 인식이 무리 안에서 싹튼다. 그를 따를 이유가 더 확실해 진다.


동문회, 향우회라는 모임은 추억팔이를 하는 집단이 아니다. 바쁜데 왜 시간을 쪼개서 얼굴을 비추고 친목을 다지겠는가? 특히 회사 내에서 동문 모임이 있다면 그 의미는 남다르다. 그래서 이를 사규로 금지하는 회사들도 있다.


반대로 공통분모가 없다면 동아줄을 잡기 어렵다.

이를테면 공채가 아닌 경력 입사는 감점 요인이다. 함께 고생하며 쌓아온 전우애가 없다. 정서적인 부분에서일단 일원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신뢰성에 있어서도 어떤 사람인지 과거를 알 수 없으니 불안 요소다. 무슨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떠나온 지는 몰라도 더 큰 이익을 좇아 조직을 떠나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들에게 있어 이익을 좇는 자는 위험하다. 본인들이 그러고 있더라도 말이다.


출신 대학 네임 밸류가 낮은 인물에게도 물음표가 붙는다. 라인은 회사에서 대를 이어 임원이 될 사람들로 짜야하는데, 자칫하다가는 대가 끊길 수 있다. 한 번 대가 끊겨 경쟁자가 득세하기라도 하면 모든 게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이처럼 라인의 멤버가 되려면 공통점을 찾는게 효율적이다. 나에 대한 검증에 필요한 수고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만약 남들에게는 있는 '연'이 없다면 업무적인 연결고리로 인성, 능력, 태도를 증명해야 한다. 속내가 드러나지 않도록 담백하게 접근하는게 좋다.



지울 수 없는 '문신'


만약 당신이 이제 막 라인을 타기로 결정했다면 신중하게 생각해 볼 문제들이 있다. 흔히 라인을 타려는 문턱에 있는 이들은 직급으로 과장, 차장들이 해당한다. 이들은 '라인'의 속성을 면밀히 이해하지 못한다. 혜택만이 눈에 가득 들어차기 때문이다. 혜택은, "승진할 때가 됐는데 마침 저들이 나를 높은 곳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실력자라는 것"이다. 제대로 봤다. 그럼 이제 이면에 도사리는 위험도 같이 살펴보길 바란다.


“아 마케팅 김팀장이요? 그 친구 최전무가 키우는 친구입니다."  


앞으로 당신을 따라다니게 될 문장이다. 그리고 문신처럼 좀 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평범한 직원들 사이에선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라이벌 조직에서는 당신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은 제약이 된다. 당신이 한 일들은 의도와 다르게 확대 재생산 될 것이다. 추악한 모습으로 각색된 근거 없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런 루머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실력으로 차지할 수 있는 기회도 종종 얻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환승도 어렵다. "어 이 사람이 나를 더 잘 이끌어줄 것 같은데?"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나중에 알게 될 수도 있다.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한다. 파벌이 제일 싫어하는 자는 배신자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조폭 영화를 보면 어느 야망 있는 청년이 "키워주십시오"라며 나타나 실력을 증명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보스의 악랄한 행동과 요구에 현타가 와서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내 뱉는다. 어떤 일이 벌어지던가? "그래 네가 행복하길 바랄게"라고 응원해 주는건 못 봤다. 손가락 한 두개 정도는 내어주지 않던가?


탈퇴에 따른 보복이 두려운 청년은 몰래 라이벌 조직에 가서 기밀을 실토 한다. 내 조직을 함정에 빠뜨리는 대가로 자리를 보장받는다. 이제 됐다고 안도하며 담뱃불을 붙인다.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지던가? 갑자기 뭔가에 찔려 쓰러지는 씬으로 끝나지 않던가?


아주 빈번하게 발생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매달려 있던 동아줄이 중간에서 끊어지는 경우다.      


“최전무 잘렸으니, 김팀장 저 친구도 이제 한직으로 쫓겨나겠네"


그렇다. 라인은 성공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실패도 나눈다. 최전무의 실각은 곧 라이벌 조직의 득세를 의미한다. 윗사람이 내 승진에 도움이 되어주기만 할 줄 알았다면 계산을 잘 못 한 거다.



넥타이 맨 마피아의 탄생


이처럼 공동운명체가 되고 나면 '라인'은 생존을 위해 점차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된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내가 잘나거나 남이 못나야 한다. 내가 더 잘나게 되는데는 한계가 있다. 실력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고 나면 노력을 기울여도 성장 폭이 둔화한다.


남을 못나게 하는건 보다 쉽다. 그들의 성과를 폄훼할 수 있다. 인성의 흠결을 전파할 수 있다. 혹시라도 그들의 비리 사실을 알아낸다면 부전승을 거둘 수 있다. 그래서 흔히 라인을 탄다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술자리가 많다. 정보전을 치르기 때문이다.  


정보전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소비된다. 인사철이 되면 동향을 파악하느라 업무는 뒷전이 된다. 아무리 함구해도 당신의 활동을 경쟁 집단에서도 알게 된다. 그들도 똑 같이 하고 있어서다.  


이제 당신과 그들은 서로를 '경쟁구도'와 같은 얌전한 표현보다는 '쓰러뜨려야 할 적'으로 인식한다. 편견이 강화되고, 서로를 향한 디스전을 거치며 혐오가 싹트게 된다.  


정신을 차리고 멈출 기회는 있다. 당신의 뇌는 잠시 제 역할을 할 것이다. 선 넘는 행동을 하기 직전,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순간이 마지막 기회다.  


거기서 멈추지 못하면 이제 당신은 감정을 밸런스 있게 처리하지 못한다. 항상 위협감을 느끼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던 중 라이벌이 내 뒤를 캐고 다니며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말을 듣는 순간, 혐오가 싹트며 육두문자를 혼잣말로 중얼 거리게 된다.  


이제부터 당신은 통제력을 잃는다. 선 넘는 행위에 합리화가 곧 진행되기 때문이다. 마치 폭행을 가한 사람이 "저 놈이 먼저 욕을 했다"거나 "맞을 짓을 먼저 했다"라고 되레 역정을 내는 식으로 말이다.       



만약 본인이 이 단계까지 와 있다면 회사를 다니는 이유에 대해 본질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회사를 처음 다닐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부터, 회사에서 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있는지,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일까지가 해도 되는 일인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가치인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지 종합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이제 막 라인을 타려 한다면, 당신이 앞으로 하게 될 행동의 한계선을 명확히 해두기를 추천한다. 혹시 아직 라인을 타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필요한지 잘 따져보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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