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밴드 붐은 온다’는 문장이 어느 순간부터 자꾸 눈에 들어왔다.
오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아직 오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는 이 문장은 나의 감정에 균열을 냈다.
두근두근. 이제야 정말 그들에게도 빛이 닿을 차례인가?
아마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붐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빠르고 세련되며 늘 시대를 한 발 앞서 해석하는 그 장르의 유연함은 내가 세상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아이돌을 본다는 것은 곧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을 감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20대가 된 어느 날, 아이돌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내게 안겨준 또 하나의 장르가 있었고 그것은 ‘밴드 음악’이라 불렸다. 아이돌이 치열하게 기획되고 연출된 찬란함이라면 밴드는 다듬어지지 않은 진심에 가까웠다.
정교하게 다듬어지기보다는 덜컹거리며 흘러가는 리듬.
멋을 부리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꺼내놓는 사람들의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직접 자신들의 음악을 연주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중요한 것이었다. 계산된 손길 없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아낸 음악을 그들은 스스로의 몸과 손으로 직접 만들어냈다.
그들의 무대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다. 박자가 어긋나기도 했고, 음정이 흔들리기도 했으며, 실수는 공연 중간중간 삐죽 튀어나왔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박자가 흔들리는 순간에도 관객의 호응에 따라 템포를 바꾸며 매 무대를 단 한 번뿐인 경험으로 만들어갔다. 그것은 예측 가능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이었다. 관객과 밴드가 함께 숨을 쉬고, 리듬을 나누며 그날의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의 창작이었다.
어느 날, 예능 프로그램에 신대철이 나온다는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그는 전설적인 락 밴드 시나위의 리더로 TV 출연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은 조금 의외였고 그래서 ‘TOP밴드’라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다.
이미 밴드 음악은 한국 방송에서 오래전에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소위 ‘카우치 사건’ 이후 방송국은 밴드를 위험하다고 판단했고 TV 음악 프로그램은 라이브 밴드를 환영하지 않는 환경이 되었다. 그렇게 밴드는 주류에서 밀려났고 무대는 점점 더 작아졌으며 사람들은 그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프로그램에서 ‘사라지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다.
누구도 보지 않는 시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틈 사이에서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반짝이는 조명도 거대한 무대도 없이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방식대로 음악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내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한 줌의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이 방송은 망했다는 이야기가 자조적으로 돌았고 시청률은 애국가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나는 그 방송이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음악이 살아 있는 풍경’을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작은 지하 공연장, 쿱쿱한 공기 냄새가 퍼져있고 무대와 관객 사이에 벽도 울타리도 없는 그곳.
무대 위에서 연주가 시작되고 스피커를 통해 쿵쿵 울리는 베이스와 드럼이 내 가슴을 때릴 때 나는 비로소 내가 음악과 함께 살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것은 단지 듣는 것이 아니라 전해지는 것이었고, 교감하는 것이었고, 함께 박동하는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밴드 음악이 단지 장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그건 태도였다. 완성된 콘텐츠가 아니라 흘러가는 순간 그 자체였다.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유한 언어였고, 삶을 음악으로 번역해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아무도 주목하지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라난 음악들은 공연장 문 틈을 비집고 나와 퍼져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그 방식이 조금씩 주목 받기 시작했다.
'밴드 붐은 온다'라는 문장과 함께.
실제로 지금 밴드들이 서는 무대는 전에 없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 최대의 록 페스티벌인 펜타포트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관객 수를 경신하고 있으며, 줄지 않던 한숨 대신 환호가 쌓이고 있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스쳐 지나갔을 이름들도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밴드 붐을 말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실리카겔은 물론이고, 밴드형 아이돌 데이식스조차 데뷔 1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제대로 조명받고 있다. 또 긴 무명 밴드 생활을 하며 포기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이승윤은 데뷔 14년만에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했다. 데뷔 직후 2~3년 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퇴장당하기 일쑤인 대중음악 산업의 세계에서 10년이라는 시간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흐름이다.
하지만 밴드에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비효율 속에서야 비로소 어떤 진심이 자라난다고 믿는다. 모든 걸 직접 해야 하고 수익도 반응도 쉽게 돌아오지 않으며,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아무런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의 진심은 끈질기게 잔상을 남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조명이 꺼져 있던 무대, 기약 없이 버텨온 사람들,
그렇게 끝내 사라지지 않은 진심에는 어떠한 힘이 있는가
이건 단지 음악 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다시 들려오는 ‘밴드 붐은 온다’ 라는 문장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따뜻한 대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