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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환 Aug 13. 2021

바다와 정원

L : 불을 조금씩만 질렀으면 좋겠어. 근데, 네가 지르고 있는 게 불인 건 몰랐으면 해.     


L : 왜냐하면, 간단해. 네가 너무 얄미워서야. 지금도 얄미운데, 지금보다 더 얄미워질 것 같으니까.    

 

L : 내 마음에 정원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고민했어. 꽃이 있고, 풀이 있고, 나비랑 벌도 있고. 그 안에는 생명이 많이 있잖아. 그리고 아름답잖아. 내가 아름다운 사람인가 한참을 고민했어. 그런데 진짜 아름다운 건 자기가 아름다운지 고민하지도 않을 것 같은 거야. 그래도 정원은 아름다운 거니까 그거 나 할게. 아, 지금도 네가 얄미워.     


L : 내 생각에 너는 바다 같아. 불을 지르는 바다. 네가 지르는 불이 무서운 건 네가 바다여서야. 너는 그냥 파도나 치고 있는 건데, 내 정원에 자꾸 불이 붙어. 그깟 파도에 불이 붙는 게 너무 열이 받다가, 그 불이 더 커져. 그럼 그깟 불 때문에 불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나서 갑자기 시를 짓기도 해.     


    제목 : 얄미워

    내 마음이 정원인데, 너는 왜 바다냐?

    (후략)     


 너에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야.  

   

L : 내 마음이 정원인데, 너는 왜 바다냐? 너는 나 같은 사람이랑 살고 싶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 너는 그럴 생각까지는 없는 것 같아. 정원을 가꾸고 싶다고도 했는데, 내 생각에 너는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아. 나를 정원이라고 불렀으면, 그럼 나를 가꿔야 하잖아. 그러니까 너는 바다인 거야. 네가 바다가 아니라면 나를 가꿨겠지. 그래서 너는 바다여야만 해. 아, 지금 네가 조금 더 얄미워.     


L : 네가 파도칠 때면 나는 가끔 영화도 찍어.     


    S#.486 바다 옆 정원 (해질녘)     

      정원과 바다는 가만히 마주 웃으면서 만나지 못하고 있었던 과거의 바다와 정원을 회상한다.     

      과거의 정원 : (바다의 파도에 불이 붙어 허둥대며) 

      바다 : (과거의 정원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하하, 정원아. 너 그랬었어? 

      정원 : (조용히 바다에게 입을 맞추며) 얄미워.     

    S#.487 정원의 침대 (아침)     

      바다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정원은 잠에서 깨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정원을 발견한다.      

      정원은 허둥대며 정원을 다시 가꾸기 시작한다.   

  

 나는 한껏 느끼하게 말을 거는 네가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전에 바다와 정원을 검색해본 결과를 떠올려. 바다 바로 옆에 아무렇게나 정원을 지으면 망한다는 거야. 그것만 봤으면 다행인데. 바다 옆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확실히 가꾸기가 제법 어렵대. 아, 또 네가 너무 얄미워.     


L :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내 정원을 열심히 가꾸기나 하려고. 네가 자꾸 태워버리기도 하고. 아니 사실은, 열심히 가꾸다 보면 바다 옆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로도 정원을 채울 수 있겠지 싶어서야. 아니면 다른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로 채울 수도 있을 거야.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울 수 있게 될 거야. 꽃도 있고, 풀도 있고, 나비랑 벌도 있을 거야.     


L : 그러니까 불은 조금씩만 질렀으면 좋겠어. 근데, 아예 꺼뜨리지는 말아줬으면 해. 

    

L : 그 이유는, 간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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