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 건넴

O brunch, 브런치*~

일탈에서 일상으로*~

by 이창우


내게 한나절의 자유가 주어져서 놀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탈’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단어는 ‘바다’이다. 바닷가를 갈 때마다 언제든 꼭 해보리라 마음먹었던 인형의 집으로 가서 우선 비비탄총으로 사격을 눈에 들어오는 못생겼지만 귀여운 인형 하나를 겨우겨우 얻어낸다. 그리곤 표창 던지기로 풍선을 많이 터뜨 인형을 또 얻는다. 이번엔 그냥 펑퍼짐한 여유롭게 생긴 인형 하나를 더 얻는 일이다. 자리를 옮겨 야구공을 던져서 목표물을 떨어드리면 와아, 엄청 큰 곰 인형을 가슴에 안을 수도 있겠지만 실다.


결과는 ‘꽝’이 없는 곳이니까 최저 수준의 상품으로 안마 방망이를 얻어 뒷목을 두드릴 밖에 별 수 없다. 하지만 해보고 싶은 거 하면서 동물 인형도 데려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해 보고 싶은 일을 신나게 했으니 알탕으로 점심을 먹는다. 간절하게 유리창으로 내 작은 그 바다를 보며 우아하게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싶었는데 대낮에 그런 곳은 죽어도 안 연다. 대천 바다는 붐비는 장소로 어둠이 내릴 즈음 열거든.


일몰과 밤하늘의 별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회색 하늘과 무거운 구름만이 가득해. 혹시라도 진한 구름 사이로 일몰이 펼쳐질까? 기대를 하며 일몰시간까지 노래방을 가는 거지. 못 부르는 노래를 킬킬거리며 세 시간을 불러대는 거야. 지친 목을 끌어안고 밖으로 나와 보니 여전히 같은 무늬의 하늘인 거지. 어느새 밀물이라 그동안 바다를 찾아도 만날 수 없었던 하얀 포말과 함께 내 가까이로 들이대는 바다의 아우성을 그저 느끼며 바라볼 밖에.



콘크리트 바닥의 해변가를 또박또박 걸으며 내게로 덮치는 바다의 들이댐에 놀란 척하기도 하며 그 딱딱한 해변가를 꽤 오랫동안 걸어가겠지. 그리곤 바닷가 구조물들의 눈부신 조명들을 탐구하고, 바다 가까이 있는 곳에서 조개구이를 먹는 거야. 좀 아쉽나? 할 때 상냥한 주인은 조개 리필을 물어보겠지만 거절한다. 후식으로 조개 칼국수를 먹어야 하니까. 와우, 환상의 시원한 바다 맛 칼국수가 내 저녁을 맛있게 마무리해 주는 거지.


길치인 나는 탐구정신을 발휘해서 서해안고속도로 달려올 거야. 이런, 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되는 거! 남은 시간에 몸 풀기를 하는 거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운동, 볼링 네 게임 정도? 쿠쿳. 일탈의 정점이 되는 볼링게임에서 스트라이크가 막 터지잖아. 흐뭇흐뭇. 엄청나게 뿌듯 뿌듯해져서 시간을 보니 한나절이 아직 채워지지 않은 거야. 좋았어. 이젠 보드게임? 우노 게임? 할리갈리? 아무거나, 좋다고. 게임을 하며 일정 시간을 다 채우고 이렇게 말하는 거지.


" 한나절의 일탈은 그대에게 행복함을 안겨 줄 거야. 왜냐면 내가 온 마음을 다해 그러길 바 라기 때문에 틀림없이 우주가 나의 소원을 이뤄줄 테니까."


파울로 코 옐로의 『연금술사』의 이 문장이 건네는 중독성으로 몇 해 전만 해도 단숨에 바다로 달려가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이렇듯 글쓰기는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걱정해 주고, 나를 기쁘게 해주기도 한다. 트위터에만 들어가면 또 하나의 세상이 손짓을 한다. 내가 있는 이곳이 가상의 세계인지 그 공간이 진짜인지. 내 앞의 어둔 거리는 심심하게 늘어져 있고, 같은 시간대에서 광장은 아우성인데 내가 있는 이곳은 그저 같은 하루로 이어진다. 모두 저들만의 세상 안에서 저들끼리 살아가는 게지.




우린 모두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앎으로 인해 생기는 삶의 지혜들과 그것을 나눈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작은 의미는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파울로의 말에 의하면 믿음은 내가 믿고 있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다. 내가 믿음을 버릴 때 희망도 삶의 불빛도 사그라들겠지. 이 시간이 아니면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지나고 나면 나와 너의 마주친 시간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마음의 이어짐을 더 강하게 하려는 신의 조화 같기만 하다. 먼 훗날, 마음속에 담은 아주 귀한 순간에서 만나는 것은 가슴 뛰며 살아가는 수많은 얼굴들이 내 곁에 있음을 마주할 것이라는 설렘이다.


두 번째 일탈의 우리들에게 바캉스(vacances)는 프랑스어로 ‘여름휴가’로 사용되는 외국어이다. 영어인 vacation 또한 그렇다. 현지에서는 '빈틈'을 뜻한다던데, 말의 사용됨이 그 사회의 허용 범위를 뜻하는 가도 싶다. 그 이야기를 꺼내며 바캉스라는 의미를 이번 여름에 '또 하나의 시작'으로 적용시켜 본다.


이번에는 내 휴식의 시간들에 제목을 붙였다. 열 일 곱들 과 함께 보내는 1박 2일의 시간들에 이름을 만든다. 청연(淸緣). 멀리 떠나 있던 인연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며 마음을 나눈다.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프기도 하지만 귀 기울여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안 보이는 힘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대한민국의 열일곱이 만나는 여름에 '바캉스'는 어떤 의미일까. 실종된 말과 그 의미들이 복원될 수 있는 시작은 바로 나로부터였다. 빈틈을 이용하여 만든 나만의 바캉스. 굳이 넘치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는 바다를 가거나 초록보다 검은 점들이 더 많은 계곡이 아니어도 즐길 수 있는 바캉스이다.


이런 바캉스를 지내는 이들, 모두가 지나는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하여 붙여질 제목은 ‘경계인’ 다르게는 ‘아웃사이더’이다.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그들이 가진 것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주위에서 아무리 경계를 만들어도 그것은 의미가 없다. 자유로운 영혼은 세상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독한 사랑의 힘이 필요하다. 사랑의 힘은 무한대이기에 내 안에 조금씩 쌓아가는 그리움으로 시작된다. 그런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지금 그렇게 아픈 열일곱은 곧 스물의 당당한 모습으로 단단해질 것이고 이내 세상과 마주함에 두렵지 않은 '어른'이란 제목을 달게 될 것이다. ‘청연’이란 모임을 시작한 몇 해 전 그 날의 마음을 굳이 여기 옮기는 것은 이제 다시 '또 하나의 시작'에서 다가오는 여름의 상큼한 기운처럼 내 시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늘 부족했던 자신을 위해 평생 책과 벗 삼으며 노는 일이 가장 잘 해내는 일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여전히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를 통해 을 나누고 있다. 글 쓰는 이의 마음은 짝사랑이다. 내가 품은 마음을 다 건네도 그 마음을 받고 내게로 손 내밀 대상은 내가 선택할 수 없기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다. 이 여름 나는 또다시 사랑에 빠져버렸다. 일탈에서 일상이 돼버린 나의 브런치 글쓰기.


아름다운 중독*~



‘일곱 가지 무지갯빛 사랑’은 내 삶의 철학이다. 빨간색은 ‘자기 사랑’이고 주황색은 내 이웃을 향한 사랑이며 노란색은 내 가족, 내 남자, 어떤 대상에 몰입하는 사랑이다. 초록색은 사회를 품는 사랑이고 파란색은 무지갯빛 사랑을 지켜내기 위한 ‘냉정’과 ‘평정’을 발휘하는 절제의 마음을 위한 사랑이다. 보라색은 ‘첫사랑’이기도 하고 그것은 ‘광기’이며 ‘열정’을 향한 사랑이다. 나는 무지갯빛 사랑으로 행복한 순간들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남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이고, 지독히 현실적이고 탁월한 선택이다. 내가 온전하게 '나'로 살아갈 시간을 마주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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