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2015년 4월 17일
세월호 참사 365일에 1일이 더해진 4월 17일 저녁, 기네스 행동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의 '거대한 촛불'은 4,475명의 촛불로 기네스북 기록을 세웠다. 정지된 상태로 10분간 지속한 '사람이 만든 거대한 촛불 형상'의 배이다. 우리는 왜 이런 슬픈 도전을 해야만 했는가? 살아있는 나의 통점이 모여 공동체를 돌보기 위한 배를 띄우는 일은 멈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추모행사에는 160여 명의 자원봉사자도 함께했다. 그들 중 한 여대생에게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사람인데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녀의 환하고 맑은 얼굴에서 내일을 보았다. 그래, 다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 없어야만 한다.
기네스 도전이 이루어지기 전 무대 위에서 공연을 한 가수 손병휘를 만나 참가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그는 “노래 부르는 사람이 뭘 하겠어요? 이렇게 나와 잊지 않고 있으니 기억하기 위해서지요.” 라 말하며 걸어가는 뒷모습은 이 도전만큼이나 아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의 시청 광장에는 내일을 위해 오늘은 광장에 있어야만 했던 수많은 시민이 있었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1년 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슬픈 도전은 어디 이것 뿐 일까. 그 시간 시청 앞에는 민주노총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의 서울 지하철 청소 노동자들이 한 달 넘게 농성 중이었다.
최근 도시철도공사와 계약 체결을 2개월 동안 연기하고 5차까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서 농성에 들어간 것이라 한다. 이들은 지방계약법에 따라 기본급의 11.7%인 주휴수당을 요구했지만, 공사에서는 1.3%를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설 명절 상여금 10만 원과 서울시의 직접 고용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에서 청소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한지 2주년이 되었다. 그러나 자회사 운영은 청소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공사와 자회사 사용자의 입장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빛좋은 개살구가 되고 있다는 점을 말한다. 노조에서는 주휴수당 반영과 종전 수당 보전을 요구하고 인천지하철과 동일하게 직접 고용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역사가 된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J.네루는 내 기억 속에서 역사공부를 하던 중에 만난 책, ‘세계사 편력’으로 남아 있다. 그가 3년 동안 옥중 생활을 하면서 그의 외동딸 인디라 간디에게 쓴 편지글을 엮은 책이다. 열세 살의 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녀를 훗날 인도의 여성 총리로 만드는데 어느 만큼의 영향을 끼쳤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가 딸의 세상을 위해 건네는 그 마음은 분명 세상의 변화를 위한 사랑이었다.
이 책의 프롤로그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영웅일 수는 없다’ 라는 글이 무척 인상적인 것은 부모가 세상을 바로 앎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한다.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생존만을 위한 삶이 아닌 존재의 삶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나온 역사를 교훈삼아 만났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존재로 살아갈 수 있어야 가능한 미래이다.
진실이란 무엇인가. 이 말 앞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있을까. 개인들의 감각에 의해 진실이 가볍게 무시되는 경우가 일상에서는 숱하다. 진실은 그 자체로서 도덕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 사용에서 극단적인 엄격성을 요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우는 바로 진실을 왜곡하려는 고의적 의지를 전제하는 거짓말이라 하겠다.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 이유에서이지 논리적 이유는 아니다. 도덕이나 윤리는 우리의 삶을 억누르고 강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비도덕적인 상황에서는 누릴 수 없기에 스스로 도덕적 책임감을 기꺼이 갖는 것이다. 국가 권력이 국민 앞에 당당해질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우리가 마주 하는 세상은 어둠과 밝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고 있다. 무력으로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없음을, 폭력에 맞서기 위해 행하는 폭력은 파괴를 낳을 뿐이라는 것을 역사에서 배운다. 무력이라 함은 물리적인 힘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국가 폭력과 여러 형태의 강자들이 부리는 횡포들이 그것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다수가 삶을 파괴하는 이들로부터 받는 좌절과 분노가 미래를 두렵게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다.
진실이 비상식으로 무장한 이의 폭력 앞에 무시되어 다시 폭력으로 되돌아 을 때, 결코 같은 방법으로 맞서지 않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정의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많은 분노들에 어찌 대항해야 하는가? 이것은 참으로 힘든 결정을 해야 하는 과정이 늘 필요했다. 부당한 현실 앞에서 진정으로 무기력하다는 것은 그 상황을 회피했을 때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은 그 부당함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한 용기를 필요로 했다.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잘못된 권력을 남용하며 이 땅의 공동체를 위협하고, 기득권을 이용하여 만든 법치를 내세운 부당한 사회 구조는 폭력을 정당화시키며 세상을 더욱 위험사회로 만들어 왔다. 보통 사람들은 날마다 생존과 자식들의 뒷바라지와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에 사로 잡혀 있기 때문에 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세상을 판단하기 마련이다. 내가 애써 의식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 1년을 넘기도록 전혀 변한 것이 없는 한국사회에 사람들이 광장에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 366일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