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기억 저장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맞는 세 번째의 한가위입니다. 4.16 참사는 제 삶에 뜻하지 않은 공포를 주었습니다. 세 아이를 두고서 단 한 번도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공포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은 일찍부터 세 아이를 독립시켰지요. 내가 바라는 아이들의 교육과 서울 토박이의 설움도 한몫했습니다.
도시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아서 서울특별시를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 작은 학교를 다니는 것은 내 선택이지 아이들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까지는 곁에 둘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싶어 했고 그들의 선택을 막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내 아이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게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제 교육관이었습니다. 세 아이들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별 탈 없이 자신들의 진로를 탐색하고 전공을 선택하기까지 큰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제 스스로 컸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생각해보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세월호 참사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만약 내 아이가 세월호에 있었다면 지금 나는 어찌 견디어낼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세월호 구조에 방관하고 있는 국가의 행위와 언론의 행태는 볼만 했습니다.
내 나라를 사랑하는 것과 국가를 대신하고 있는 이 정부는 등가일 수 없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무엇이든 해야 했고 사회 참여라는 작은 일부터 했습니다. 4.16 연대에 가입하고 후원금을 보내고 팽목항을 다녀오고 기억의 숲 조성에 힘을 보태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알아내려는 부 프로젝트에도 힘을 보탰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진상 규명을 하는 유가족들을 한 번은 봬야 할 것 같아 그곳을 갔습니다. 진실은 감춘다고 감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잊는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독재는 그 어떤 말로 덧칠을 해도 독재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역사는 결코 무죄로 하지 않을 겁니다.
역사의 현장, 한국정치의 무능함과 자명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휘청거리듯 있는 곳,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곳, 광화문 광장이었습니다. 사유화된 권력들에 의해 사람은 밀려나고 있어도 한국사회의 작은 공동체들의 기억과 쉼 없을 날갯짓은 나이도 성별도 시공간도, 그 무엇들도 다 뛰어넘어 늘 이 광장에서 소리쳐왔습니다. 경복궁의 광화문으로 더 멀리 청와대로 시선을 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던 그 날, 4월 16일부터 나와 아무런 인연이 없어도 이미 그 참사는 나의 시간을 파고들었습니다. 늙은 나비의 날갯짓을 위해 사비를 털어 사업을 제안해 주신 평범한 시민 이영구 선생님은 한겨레신문사를 찾아 ‘한국 사회의 길을 묻다’ 에세이 공모전을 제안했습니다.
그렇게 전국에서 마음을 추스리기 어려웠던 이들이 글을 보내기 시작했고 공모작들 중 59편이 실려 출판된 책이 <0416>입니다. 그 물음에 답을 찾아가던 나도 공모를 해 책이 출간되었더군요. 저녁에 열린다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전에 광화문광장을 들러야만 했던 그 날은 세월호 참사 166일이 되던 9월 29일, 월요일이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의 정오가 막 지난 시간에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마치 증명을 위한 것으로 내 마음이 잘못 전달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변명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기에 누른 한 컷 사진입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사회를 향한 나의 시선을 사회에 깊숙이 머물게 하고 멈추지 않을 ‘저항’이라고!
서울로 가는 길은 하늘과 땅 사이 나를 두고 한없이 울어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도착한 내겐 작은 꾸러미가 있었죠. 세월호 참사 100일부터 담은 17자 하이쿠를 손글씨로 담은 한 묶음의 기록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유족들과 다르지 않았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이것도 자기 위안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이마저도 하지 않고는 하루를 다시 맞는 일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곳을 향해 걸어가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 비가 나리는 데 버려진 듯 이렇게 계속 있어야만 했던가. 광장의 양 옆으로는 일상이 아무렇지 않게 열리고 있습니다. 버려진 광화문 광장에 동상 두 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만 시선을 주고 있는 듯했습니다.
국가가 이럴 수 있는 건가‥
진실이 사라진 한국사회의 현실의 맨 땅에서 단식을 하며 무너진 가슴으로 있어야 하는 그들은 바로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수도 서울의 심장이라는 광화문 광장 주변은 그저 비 나리는 오후에 짜증을 부리는 일상들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사회의 슬픈 자화상이 광장에 그렇게 너부러져 있었습니다. 진상규명도 되지 않아 왜, 내 아이들이, 내 가족들이 그렇게 바닷속에서 죽어가야 했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사람이 없는 광장에서 사람이기를 부르짖는 그들 앞에 얼마나 더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의 비통함으로 있어야 했는지. 평생 그 빚진 마음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 같아 기억하기를 결코 그만두지 않으려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갑작스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에 비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공포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팽목항을 떠날 수 없는 마음, 304명의 생명을 구하지 못한, 아니 구하지 않은 국가의 폭력 앞에서 저항하기에 그 공포심은 조금 잦아들고 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세월호 참사의 기억들이 한 곳에 모이고 있습니다. <416 기억 저장소>에 마음을 모아 다시는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 후원 회원이 되고 이 글을 씁니다. 달님에게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304명의 넋을 생각하며 한가위를 맞는 새벽입니다.
[416 기억 저장소] http://416memor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