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나는 방] 6. 100만의 함성, 들리나...요!
완전무장 준비를 합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며 혼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이미 역사의 현장에 선 그 날, 2016년 11월 12일이 지난 월요일입니다. 지난 금요일의 무인카페의 변화 없는 날. 혼자 지난 시간의 이야기도 함께 이어갑니다. 그 날부터 나는 이미 늦가을 시청광장으로 떠나 있었거든요. 무인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두 시간을 같이 보낼 편혜영의 『홀 The Hole』입니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깊은 구멍으로 빠져들 위기감이 들긴 하더군요. 누구나에게 있음 직한 상황이긴 하지만 그 누군가의 확률은 극히 낮을 것만 같은 거죠.
작년과 달리 금요일 밤부터 천안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주말의 일정이기에 조금 서두른 준비였습니다. 아아,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씨만큼은 더없이 좋은 11월의 여느 주말이었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땅은 보이질 않았고 앞 친구의 옷자락을 꽉 잡은 채 꼬리잡기 놀이처럼 사람을 뚫고 지나 광화문으로 가야 했습니다. 금요일 밤을 천안의 병원에서 지내게 되어 이 책을 거뜬하게 읽어버릴 수 있긴 했습니다. 11월 11일이 빼빼로 데이라고 첫째 애인이 빼빼로를 줍니다. 허허. 이미 오늘은 가래떡 데이로 바뀌었거든요^^ 그래도 그 마음이 이뻐서 행복했습니다.
편혜영의 『홀 The Hole』을 읽으며 든 생각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 우린 그 순간을 기억하기보다는 현재 주변을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먼저였지 싶더군요. 특히나 소설의 주인공처럼 대형사고로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내가 시간의 흐름도 모르는 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병원에서 깨어난다면 말이지요. 이렇게 깨어났지만 말을 할 수 없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의식만 살아있는 경우의 주인공이 독자와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리는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의 말이 그를 통해 내게로 전해져 오는 거죠.
이 책을 덮으며 지금을 돌아봅니다. 좀 더 정확히 숫자를 꺼내본다면 2012년 12월 19일. 대선 결과가 도저히 납득이 안 되어 몇 날을 실성한 듯 까무러치며 일을 놓고 허우적거렸던 그 해 겨울을 생각합니다. 4년이 되어가는 동안 숱한 일들에서 만나는 어이상실. 정부의 무능과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와 지독한 이기주의. 정당들의 정쟁들에 시달리던 답답함은 이제 끝을 보이고 있으니까요. 그동안 뚫린 숱한 구멍들이 점점 넓고 깊어져 거대한 구멍으로 뚫린 이 사회를 마주합니다.
한 개인의 불행이 가져온 결과는 끔찍합니다. 아내를 잃은 주인공은 장모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빠지고야 말 넓고 깊은 구멍으로 몰립니다. 이 책에서 연장되는 끝내 묻힐 것이라는 마지막 상상은 용납할 수가 없더군요. 국민을 우롱하면서 진행되어 온 결과를 바꿀 시간이 지금이기에 우리는 길 위에 서게 되는 것이겠죠. 한국 사회의 커다랗고 깊은 구멍. 권력형 비리와 부정부패의 시간이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제는 1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굳게 두 발로 광장에 서 있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파 놓은 구멍으로 들어가야 하겠지요.
11월 12일 오후 3시 15분에 서울역에서 일행을 만나 실감이 듭니다. 이미 사람으로 가득 채워진 시청 광장에서 목격한 이 장례 행진에 이토록 유쾌할 수 있어도 되는 것인지... 하. 하. 하. 그래도 웃습니다.
백만 명이 넘게 결집한 서울의 함성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민의가 충분히 전달되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쩌다 한국은 이렇게 되도록 만만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가? 개인마다 떠오를 생각은 많겠지만 내가 놓인 자리에서 생각하면 가장 큰 원인이 교육의 정체였던 것 같습니다. 사회에 요구할 당당한 알 권리를 더 강력하게 촉구하는 일을 하려면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했으니까요. 거대 언론의 협잡이 그 선두에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합니다. 저널리스트가 버티기 어려운 사회 구조에서 개인의 헌신은 너무 큰 희생이 되곤 했으니까요.
우선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행진의 민의를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11월 12일 역사의 현장에서 사람이 모여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황홀한 시간을 온몸으로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