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말 건넴

단 한 송이 꽃

[필스교양] 어버이날의 멋진 제안

by 이창우


2017년 5월 8일. 처음, 어버이날에 꽃이 내게로 오지 않은 날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시작했던 해부터 한 번도 꽃이 없는 날은 없었다. 너무 당연하게 맞는 날이었는지 일정상 다음날 만나 밥을 같이 먹기로 한 날까지 연장된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꽃은 없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어버이날이 지나기를 두 시간 정도 남았을 때 드디어 꽃을 받았다. 서울에 올 때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게 되는 스물 한살 친구가 살굿빛 작은 화분에 가득 핀 꽃을 주었다. 평소 수다를 떨며 지내던 그에게 막내딸 같다며 말을 건넨 것을 기억하고는 마침 같이 있게 된 어버이날 선물을 한 거였다. 울컥. 코끝이 흔들리고 저절로 벌어지는 입과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남은 시간 먹먹하기까지 했다.


어버이날을 기념하는 자식들의 선물과 뷔페 식사까지 마련된 날인데 무언가 내 삶에 낯선 마음이 다가왔다. 단지 꽃이 없을 뿐인데. 몸이 마음을 알아차린 듯 뷔페를 마련하고 함빡 웃음 짓던 어버이날을 맞아 다음 날 만난 그 날은 오랜만에 찾아온 내 위경련 덕분에 서둘러 헤어지고 말았다. 억지로 맞춘 결과의 이야기지만 이번 어버이날은 그런 날이었다.


내게 단 한 송이 꽃, 그 의미는 다른 무엇보다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시작된 사랑과 책임이 담겨있고 내 삶을 물 들인 향기이기도 하다. 그 향기가 일 년에 한두 번은 내게로 왔기에, 이어지는 남은 시간이 늘 향기로웠기에 그런 것일까.


지금 우리가 갖는 기념의 날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외부에서 들어와 한국의 정서에 적당하게 섞인 경우가 꽤 있다. 어버이날도 그 기원은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어버이날은 1868년에 남북전쟁에서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들끼리 서로를 위로하는 취지로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만들었던 앤 자비스라는 여성이 사망하고 난 뒤 앤 자비스의 딸 애나가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교회 모임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것도 애나가 교인들에게 흰 카네이션을 나눠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미국에서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을 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들의 노고를 기리는 어머니날로 지정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했다가 1973년에 대통령령으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공포되면서 1974년부터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스갯소리로 이날 하루마저도 시샘을 부리는 한국 남자들의 아우성이라고는 하더라만 부모 없이 자녀는 태어날 수 없으니 괜찮은 변화이긴 하다.

하지만 최초의 제정 취지를 참고해서 어버이날의 의미를 확장했으면 하는 대안 미디어 팟캐스트의 <필스교양>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의 경우처럼 꼭 자식이 아니어도 어머니와 같은 대상을 위로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작지만 엄청난 감동이다. 이 마음이 또 한해를 잘 살게 해 줄 것이기에.


자식 잃은 부모를 위로하는 날. 어버이로서 다른 누군가의 자식을 전장으로 내모는 일을 하지 않는 평화를 생각하는 날. 한국의 정서와 맞물려 다소 달라진 의미에 최초 어머니날의 의미를 되살리자는 그 방송을 들으며 울림이 온다. 뜻밖에 자식을 잃고 어버이날을 맞은 이 땅의 많은 부모들이 만날 상실감과 고통을 함께 위로하고 나눌 수 있는 날이라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질 수 있으니까.

어버이날은 전몰장병의 어머니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날에서 시작됐다.
이 최초의 의미를 현재 우리의 어버이날에 되살려 공동체와 상생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날로 만드는 것을 제안한다.
-팟캐스트 #필스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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