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현실과 조우할 때..

유리알 유희 / 헤르만 헤세

by 이창우



Memento mori!


그리고

모든 시작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기에

우리를 보호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헤르만 헤세-





[책장을 열며]

아마도 20여 년 전의 시간.

홀로 남겨진 골방에서 마주한 책으로 생명줄을 잡고 있던 그 시간이지 싶다.

'유리알 유희' 헤세에게 받은 위안은 무엇이었을까?

다시, 그것을 찾아가는 시간에 있다.

홀로 남겨진다는 의미는 타의건 자의건 무관하게 내게 다가 올 순간이었고 그동안은 나만 있었다.

그때, 그 시간은 그때로 충분했다고 생각했건만.

하지만 다시, 다시.

늘 그랬던 것 같다.


교육이 한 공간에 정체될 때 이미 교육의 힘은 상실된다.

이상이 현실과 조우할 때 그 가능성의 시작이 열릴 수 있다.

교육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배우는 과정이다.




[책장을 덮고]



내가 왜 그때, 유리알 유희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갈 수 있었던가...

그것을 알아차린다.

남아있는 삶, 길 위에서 물었을 때 한 권의 책은 길을 묻는 이에게 표지 역할을 해왔다.

그것을 의심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내 유일한 스승이었고 동지였으며 벗이었기에.

내게 유리알 유희를 삶에서 발견해나가고자 했던 것.

유희의 삶을 동경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첫 발걸음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20여 년 전 그때 내 안에서.

유리알 유희의 희망 문서 안에 스며 있었다.

시대의 흐름이나 시대의 정신과 무관하게 지성인으로서 다할 수 있는 무엇.


이제야 다시 이 책을 불러들이게 되기까지는 그 무엇이 필요함을 깨달아가기 위한 여정이 필요했고

그때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재능 없는 보통의 인간으로 적어도

나의 유리알 유희도 가능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을지도 모른다.

20여 년 전에 그 열망이 내 안에 스며들었으리라.


그래서 다시 지금 헤르만 헤세의 책을 기억해 내고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아직 유효했던 것일까 싶다.


내 안에 스며있던 가슴 깊숙이 담겨있던 그것을 찾아낼 수 있게는 되었으니.

가장 귀하기에 가장 먼저 파괴될 수도 있는 유희.


마기스터 루디.

유희 알 명인.



크네히트와 야코부스의 우정.

친애에서 조화가 가능한 세계.


우정은 집착이 아니다.

상호 존중이다.

때로 안 될 것을 알면서 외치는 것이 필요했다.

그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금은 느낄 수 있다.

천재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유희.


'마무리'는 '단절'이 아니다.

유희의 끝 단계는 죽음이다.

크네히트에게서 소년에게로 이어지는 이상향이 실현되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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