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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Jul 16. 2016

착한 전기는 가능하다

[소박한 자유인] 불편한 진실에 대하여

 불편한  진실이 너무 많은 사회는 구성원 간의 불신으로 지독한 이기주의를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들이라고 하기보다는 한계의 끝에 있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끊임없이  양산되는 ‘필요악’과  ‘사회악’은  멈출 수 없는 무한궤도 위의 열차 같다.  어떻게  해야 이 열차를 세울 수 있을까. 이  열차의 끝은 어디일까.   


 우리가  몰랐던 전기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2012년  1월  16일  경남 밀양시 산외면 보라마을에서 “오늘  내가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을 불사른 70대  농민의 3주기를  맞아 발간되었다. 불편한  진실,  눈물과  이권으로 얼룩진 전기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저자 하승수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계기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국책사업은 그 나라의 국민을 위한 일들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돌아보면 의문점이 넘친다.  그것들을  따라가면 ‘돈’  때문이었다.  이런  연결고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를 무조건 신뢰할 수 있었다는 것일 수도 있다.반면  국책사업들에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것이 더 맞을 것같다.  진정  이 모습이 조국을 사랑하는국민들이었던가.   


 애국을  내세우며 토건을 국가성장 정책의 기치로 삼아온 ‘잘  살아보세’의  시대를 지나왔기 때문은 아닐까. 70년대  흰 쌀밥을 맘 놓고 먹을 수 있었다는 시대의 유령처럼 떠도는 한강의 기적은 잠시 반짝이는 불빛과 다를 게 없었다.  한강을  주변으로 빛나는 불빛이 전 국토를 비추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 신화의 그늘에서 목숨을 던져야만 했던 노동자가 다수였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한국사회에서 왜 착한 전기가 가능한지를 알 수 있다. 밀양의  거대한 송전탑이 왜 생겨야만 하는가?  문제의  출발점은 원전 같은 대규모 발전소를 많이 짓는 것이다.  그런  발전소들을 많이 짓다 보니 송전하기 위해 송전선을 많이 짓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기를 누군가가 쓰게 만들어야 하니,  원가  이하로 기업들에 ‘산업용  전기’를  공급해 왔다.  


 왜?  이런  시스템 속에서 돈을 버는 기업이 있다.  정부의  그런 정책 때문에 밀양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송전탑이 세워지고,  그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주민들이 생겼다.  게다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원전은 우리의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어느덧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밀집도가 가장 높은 국가가 되었다. 거기에  보태어 짓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하고 기후변화에 몫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국가이다.  경제규모로는  절대로 세계 7위가  안 되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그렇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금의 청소년,  청년들과  미래세대가 뒤집어쓰게 되어 있었다.  이런  시스템은 전혀 정의롭지 않다.  원전이나  송전탑을 안 지으면 전력난이 온다는 것은 완전한 허구이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돈을 벌게 하기 위해 쓸데없는 발전소와 송전탑을 짓고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정책이 기업을 위한 시스템이기에 바꾸지 않으려는 세력과 맞서야 한다는 것은 단지 원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착한’이  붙은 소비자가 되는 일이 우선은 내가 할 수 있는 시작이라는 것을 다시 마음에 담는다.  그리고  함께 힘을 모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원전  마피아-전력  마피아.  낯설지  않은 ‘마피아’는 한국사회에 넘친다.  마치  유행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앞 다투어 마피아 질이다.  이  국가의 폭력 앞에 착한 국민들로 대접받는 것이 과연 참아낼 수 있는 것인가.  나만  착하다고 바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늘 훼방꾼 노릇을 한다.  그런데도  개인의 선함이 공공의 선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희망만큼은 놓을 수가 없다.     


 이권  때문에 대기업들의 유착은 기업가들의 윤리의식 문제라 보기에 ‘착한  기업’을  현명한 소비자가 키워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현실 문제라는 점에서 늘 걸림돌이 있기 마련이긴 하다.  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해대는 정부 관료의 마피아 질은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정경유착으로  벌어지는 일이기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내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단지  5년짜리  정부가 국가의 미래를 걸고 저들만의 이해관계로 몰아가는 시스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은 진실을 알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시민의 참여이다.   

  

 여전히  중앙집중방식 발전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지역 간 불평등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점을 하승수는 짚어 준다.  송전선을  땅 밑으로 지나가게 해주면 거대한 송전탑으로 인해 생기는 지역 주민들의 직접적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지중화  비용이 수천억이 든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상식적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지만 그 상식은 요청자 부담으로  바뀐다.  송전선  건설이 필요하지 않은 지역분산형 발전을 하면 되지만 여기에도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힘으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은 민주주의 국가에선 있어선 안 될 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여전히 힘으로 밀어부친다.     


 “원전이  없으면 전기를 못 쓰거나,  전기요금을  대폭 올려야 하는 것 아닐까”하는  걱정 때문에 “원전을  줄여나가자”는  얘기를 선뜻 하지 못한다.  송전탑  건설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생각은 정부와 한전, 원전마피아와  전력마피아들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 깊이 새겨놓은 생각이다.  끊임없이  불안감을 주고, 끊임없이  일방적인 홍보를 하기 때문이다.  원전과  관련해서 우리가 내는 전기요금 중에 매년 100억  원 이상을 “원전은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홍보하는 데 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알  권리’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또 한 번 깨달으면서 저널리즘의 역할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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