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를 지키려는 노력 / 황성희
불감증
창문 밖 허공. 눈만 뜨면 만나는 출구. 기꺼이 뛰어내리지는 못하고. 눈등 위의 붉은 점이 혹시나 흉할까 불안한 나이를 서글퍼하고. 짝눈 교정을 위한 쌍꺼풀 수술은 미적 성형과는 다르다며 발끈하고. 생리 혈 얼룩진 팬티를 버리면서 이 정도 낭비는 해도 된다며 울컥하고. 4층 여자에게 새로 한 파마의 이름을 묻지 않는 것은 질투보다 교양에 가깝다는 해석이나 하면서. 오늘의 연도와 오늘의 날짜와 오늘의 요일을 나란히 쓰는 일에 아무 두려움 없는. 지구 한 바퀴의 판타지와 동네 한 바퀴의 리얼리즘을 순순히 인정하는. 그러나 때로 청소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출구를 바라보는 포즈.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감명 깊게 읽은 죽음을 들고. 진정한 용기는 전쟁도 혁명도 변절도 아닌 오늘을 견디는 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다시 마침표를 찍는 손. 털끝 하나 떨리지 않는.
/황성희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우리말보다 한자어가 더 기분 좋게 보이는 말입니다. 이 말을 내세우며 살고 있습니다. 꼬박 하루를 지켜보면서 검푸른 새벽을 지나 여명까지.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 밤이면 애써 자려고 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이 세계를 향해 느낄 수 없는 불감증일까 생각했습니다.
일상의 감동 없음이 아니라 이 세계가 여전히 나와는 상관없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기에 만들어진 불감증입니다.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져 몇 시간의 수면이어도 눈 뜨면 다시 아침입니다. 오늘 잠들고 다시 오늘 일어납니다. 내일 잠들고 또 내일 일어나겠지요.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으면 창밖의 반짝거림으로 거리에 나 앉은 느낌입니다. 고동색 블라인드를 내리고 작은 조명등을 켜고 눕습니다.
감기려 하지 눈꺼풀이 미워지기도 합니다. 눈을 꼬옥 감습니다. 역시 잠이 오질 않습니다. 내일은 커피의 양을 줄여야 할까 봅니다. 그런데 내일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커피를 십 대부터 마셔서 내 몸은 카페인으로 인한 수면 거부는 아니야. 이 불면증은 내 일상과 같아서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굳이 밤이어야 잠을 자는 것은 아니니까요. 잠이 오면 잘 수 있는 너절하게 늘어난 내 시간 덕분에 약간의 수면에 대한 강박도 없습니다. 습관처럼 마시는 커피가 나에게는 생명수인 까닭에 오늘처럼 내일도 커피를 마실 겁니다. 내 몸이 본능처럼 그 향기를 구걸하니까요.
내게 비늘처럼 깔린 불감증은 일상의 평온이고 세계의 몰이해를 향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이 세계의 소음과 상관없이 나는 나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불감증과 불면증이 아닌 이 세계의 부정의와 몰상식, 합리주의와 이성에 너덜너덜한 채로. 작더라도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의 가치를 지켜내고 싶은 마음 하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