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16.

언플러그와 책방 문화

by 이창우

이사 준비로 바빴던 12월에 늘 하던 짓을 미루고 있다가 쌓아둔 책을 펼쳐볼 여유를 갖는다. 노벨문학상 작가 작품 읽어보기였는데 2022년 노벨 문학상은 아니 에르노였다. 며칠 전부터 아니 에르노 작품으로 하루가 빠르게 지난다.


아니 에르노는 오토 픽션이라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으로 작품을 만든다. 작가가 성장하고 살아온 시대와 지극히 개인적인 것까지도 실제 경험한 것들로 구성한다. 이런 글쓰기 방식이 내가 좋아하는 장르다.


고전 문학을 읽다 보면 나는 허구라는 생각을 자주 하지 못한다. 그 시대와 갈등하는 등장인물에게서 보이는 고뇌가 고스란히 내게로 감정이입이 되고는 한다.


시대에 놓인 사회 환경과 위치가 위대함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닐까. 부모님을 떠올리면 서울에서 중산층이라는 그럭저럭 살아가기 충분하게 태어난 분들이다. 회사 일로 바쁜 아빠와 전업주부로 있어도 큰 문제없는 상황. 악착같이 더 부자가 되고 싶거나 커다란 욕망을 가진 분들은 더욱 아니다.


아빠가 빨리 떠나셨지만 평범한 부부였다고 기억한다. 이 사회에 무관심하고 가족을 만들고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선하게 살아오셨을 뿐이다. 특별하다면 언니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외국으로 나가 대학 입학 준비를 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던 모습만 기억한다. 집에 언니가 없는 날이 더 많아서 내게 언니라는 존재가 있다는 의식도 별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늦잠을 자고 눈을 뜨니 대낮이다. 산책하러 나가기도 싫은 날이다. 책방에서 조금 멀리 가기 위해 자전거를 장만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갑자기 든다. 초등학생일 때 타고 자전거는 점점 고물덩어리처럼 취급되었다. 어릴 때도 자전거를 타는 일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유효하다.


이 마을을 지나다니면서 자주 만나는 광경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대형 자전거에 짐을 싣고 다니는 어른들은 꽤 자주 목격된다. 이곳에서 왕복 1시간 거리는 걸어 다닐만하다. 그 이상은 힘겨운 일이 될 것 같고 조금 더 멀리 움직이기 위해 자전거를 장만하기로 한다.


봄날이 오기 전에 근처에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재미있게도 책방 근처에는 자전거를 팔고 고치는 가게가 있다. 이곳은 내게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곳이다. 신나는 일이다. 어떤 마음을 먹으면 근처에 다 있다.


쓰지 신이치가 책에서 말한 대로 언플러그를 실행하면서 이 행동이 굉장히 적극적이고 쾌락주의적인지를 깨닫는다. 삶 기술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이렇게 살아가려는 내게 엄마가 하는 말은 궁상맞다는 말이지만, 괜찮다.


플러그를 뽑는 일은 테크놀로지나 기계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쾌락, 즐거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기술인 '아트'를 회복하는 일이다.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중-


나는 책방에서 시작하는 쉽게 같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집중하기로 한다. 살아가는 기술에는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도 포함되지만, 책을 벗 삼아 혹은 영화를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가능하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궁상맞은 딸은 엄마에게 집에 처박아 둔 빔 프로젝터를 안 쓰면 찾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이동 스크린만 장만한다면 영화도 공동체 상영처럼 무료로 사람들과 같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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