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문을 열고 산책을 나서려고 할 때 알록달록 보자기를 쓴 사람이 문 앞에서 서성인다.
언제 책방이 생겼네요?
지난 12월에 이사 왔어요.
우리 동네 책방이 없었는데 잘 된 일이네요. 들어가도 되나요?
그럼요, 어서 오세요.
무료로 책도 빌려준다고 붙어 있네요?
제가 읽던 책을 빌려 드리기도 해요.
책은 좀 팔려요? 빌려가는 사람은 있고요?
이제 한 달 지났는걸요.
책 읽는 거 좋아하면 뒤에 도서관 있잖아요. 매주 독서모임 하고 있는데 같이 할래요?
학창 시절 이후 처음인데 독서 모임이 있다니 좋은 일 같아요.
여기 앉아서 책을 읽다 가도 되는 거예요?
그럼요. 커피 드릴까요?
들어오면서 커피 냄새가 좋던데 한 잔 줄래요? 오늘은 아직 안 마셨으니.
근처 미용실에 퍼마를 하러 왔다가 기다리는 동안 발견했다고 책방을 찾은 보자기를 쓴 사람은 독서모임 회장님이다. 정민숙이라 일러 주면서 연락처를 건네고 활짝 웃으며 떠난다. 그분이 건네는 마음이 내 안에 뭉쳐 있는 차가운 덩어리를 풀어준 것 같다.
모퉁이 카페를 지나 왼쪽으로 좁게 난 길을 따라가면 주변과 어울리지 않지만 그곳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주는 멋지게 디자인된 공공도서관이 있다. 시설도 너무 훌륭해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은 나에게 필요한 장소가 다 있다는 큰 안도감에 푹 빠진 날이다.
아담한 크기 도서관은 아기자기하다. 서가도 열람실도 휴게 공간까지도 작은 공공 도서관으로 지역에 독서 문화를 지켜내는구나 싶어 편안하게 서가를 둘러본다. 평일이고 낮이어서인지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도서관 카드를 만들고 도서관 안마당이 다 보이는 열람실에서 책을 펼쳐 본다.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모임은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라서 저녁 7시에 시작이다. 내게도 적당히 좋은 시간이다. 저녁 먹고 어슬렁 도서관으로 걸어가면 된다. 독서모임은 고등학교 다닐 때나 억지로라도 가능했던 일인데 성인들 독서모임은 어떨지 설렌다.
독서모임에서 이야기 나눌 책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이라 수능에도 나왔던 작품이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작품 중 단편을 읽어가는 중이란다.
무언가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독서모임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느낀 감정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애틋함이기도 하다. 젊은 친구가 오게 되어 활기차겠다는 회장님 말씀이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내가 살아왔던 공간을 떠나온다는 것은 나를 이루던 세상과 결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새로운 공간에서 나를 이루는 것들을 하나 둘 채워간다는 것은 인생 전환이며 삶에 기운을 북돋는 일이다.
책방을 열면서 그동안과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 익숙하게 나를 찾는다. 어디서건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있다. 적은 사람들이라 만나기 어려울 것 같지만, 접촉하는 공간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공간을 이루는 것은 사람의 향기다.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내가 원하고 바라라는 일이 이곳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 내 살아가는 기술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믿음까지 기운 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