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밋밋하면 안 될까? 나를 가리켜 너무 밋밋하다며 변화를 얘기하던 주변인들은 남아있지 않다. 다들 변화에 따른 사회 한 부분에서 먹고 사느라 바쁘다.
밋밋한 내가 누리는 여유로운 생활이 그들에게는 불확실한 미래에 걸림돌처럼 있다. 근거 없는 낙천주의자라는 말에 믿음은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예측으로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뿐이다.
가진 것도 없는 나는 사회에서 늘 거론하는 불안함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면 무언가 길이 보이지 않을까. 대책 없다고들 하지만 지금 잘 살아내는 이것이 내게는 대책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유년 시절 접하지 못한 경험은 아마도 '맛'에 관한 기억 같다. 평균적인 학교 급식과 집에서 먹는 식탁 위 음식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이야기가 내 흥미를 끌지도 않는다. 미각이 발달하지 못한 것은 식탁에서 맛을 음미할 여유 없이 가족이 다들 바빴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집에서 밥을 먹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만들어 놓으면 먹는 사람도 없다며 요리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나마 자취를 해서 가끔 호사를 부린다고 해도 결국에는 패스트푸드를 멀리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번거롭고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먹는 일은 간단하게 해결하는 일 중 하나였고 관심도 그다지 없다. 지역에서 살아가다 보면 날 것 그대로를 먹는 일부터 가능해지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새롭게 입맛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닷가 마을이라 갓 잡은 수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지역이라는 것을 눈앞에 바다가 없으니 잠시 잊었다. 5분을 돌아 나서면 작은 항구가 있고 버스로 10분을 가면 바다가 보인다. 특화시장이라는 곳을 가보니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나타난다.
동태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이라는 것을 처음 알아차렸다. 물어보니 동태여도 바다에서 잡으면 바로 냉동해서 옮기는데 그래봤자 하루면 다 팔린다고 한다. 특히 겨울에는 길어야 3,4일이고 여름이나 되어야 일주일 간다는 말이었다. 서울에서 만나는 동태는 그만큼 바다에서 멀어지니까 제 맛을 냉동고에 다 빼앗길 것이니 맛이 덜 할 수밖에 없다고.
이 충격적인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더니 시큰둥하다. 동태가 다 그렇지 뭐. 괜스레 호들갑 떤다며 핀잔을 준다. 나같이 맛에 둔한 사람이 느낄 정도라면 이것은 대단한 발견이다. 로컬 푸드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은 아니다. 이런 지역에서 생선 맛을 찾을 필요도 없다.
동태 한 마리를 사 와 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일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김장 김치라며 보내준 엄마 생각도 하면서 행복해진다. 너무 맛있다. 친구들이 오면 대접할 기막힌 재료다. 바쁜 일정이 지나면 한 번은 나를 찾아주지 않을까.
이참에 제주에서 살고 있는 금지에게도 자랑을 하지만 그는 이미 제주 맛에 홀딱 빠져 사는데 그걸 이제 알았냐며 시큰둥하다. 제주에서 떠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특히 은갈치 때문이라고.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한다지만 서울에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소비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더 많이 일하고 그러려면 내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 수입으로 이어진다면 행복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