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혼자 맞는 새해다. 묘하게 감정이 뒤섞여 2022년 마지막 밤을 지켜본다. 해돋이 보러 가자는 말을 듣지 않고 보낸 첫 연말이기도 하다. 새해맞이 사진들과 새해 인사로 가득했던 1월 1일 형식은 이제 필요하지 않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준비를 마쳤고 새해를 바라보는 설렘과 반가움으로 시작하려 한다.
내가 떠나자 엄마도 움직인다. 연말이라며 사진을 열심히 보내고 여기저기로 봉사활동 다니는 곳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가는 데 유효 기간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 엄마도 홀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야 한다. 육십이 넘은 엄마에게 삶 전환은 더 필요한 일이다.
내 앞에 펼쳐있는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는 사진처럼 있다. 무료책방이라는 의미도 살아나지 않는다. 평화롭게 12월을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책 한 권 팔았다. 책방 옆 의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노년>>을 사갔다. 책을 파는 일이 이렇게 기쁠지 생각도 못했다.
출근하면서 진열대에 있는 책 제목에 눈이 가서 퇴근하고 이제야 들어왔다며 웃는다. 시몬 드 보부아르 작품 <<노년>>은 엄마가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하니 먹힐 것이라고 장담하며 추천한 책이었다. 보통 책 두 배도 넘는 내용이 제목만큼이나 묵직하다. 이 책이 엄마말대로 첫 번째로 팔리다니.
그동안 책방을 둘러보고 다음에 들린다는 말을 남기고 가는 사람뿐이었다. 처음으로 책 한 권을 팔았다는 이야기를 생각 없이 말해버린 것은 큰 실수였다. 그 후로 책이 팔렸냐는 말을 어김없이 빼놓지 않는다.
돈을 벌기 위해 이곳에 책방을 연 것은 아니라고 그렇게나 오래 설명을 했다. 엄마에게 내가 바라는 미래에 대해 충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사실조차 왜곡되어 엄마 머릿속에 박혀 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뿐이다.
엄마 걱정과 한숨소리로 새해 첫날이 지나간다. 그것만 빼면 책방 언저리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지나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딱히 요일 구분이 없는 곳이다 보니 라디오를 켜야 알게 된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결국, 휴대폰을 보지 않아야 한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으면서 지나던 겨울이 생각난다. 내게 스물은 가끔씩 돌아봐야 하는 시절이다. 앞을 보며 살아가라 하지만 늘 되돌아보는 내가 있다. 마치 스물에 정지되어 버린 한 사람과 줄로 이어져 붙들고 있는 것 같다. 한 걸음 떼기가 무거운 이유였고 더딜 수밖에 없다. 뒤돌아 보면서 이해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빈 공간을 채운답시고 집에 있는 책이 모조리 책방으로 와 있다. 나도 <<노년>>을 읽어 보려 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어떤 노년을 예감하며 늘어놨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보부아르 역시 기득권으로 살아왔기에 가능한 이론 아닐까 싶어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직 노년을 생각하기는 너무 이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