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10.

발길 닿는 대로

by 이창우

책방은 어느 정도 안정된 분위기를 가진다. 역시나 기대하지 않은 일이지만, 책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 유리벽 너머에서 눈길을 주는 사람은 늘어났다. 이제 하늘볕이 따스한 낮에 첫걸음을 내딛기로 한다. 해가 지면 띄엄띄엄 가로등 불빛과 어두운 상점 벽에서 반짝이는 간판만이 보인다. 거리가 텅 빈다는 것이 서울에서는 깊은 밤에나 가능하다. 여기는 저녁 9시면 거리에서 사람을 볼 수 없다.


사람이 없는 거리라 해도 혼자 환한 대낮에 어슬렁거리며 길에 들어서면 사람이 여기저기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책방을 두고 이어지는 길을 가다 보면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철길이 있다. 오늘은 그곳에서 다시 몸을 돌려 오른쪽으로 간다.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니 고작 30분이다. 돌아와서 머릿속 그림을 떠올리며 그림지도를 그려본다. 내일은 다른 방향으로 길을 나설 생각이다.


규칙적으로 반듯하게 잘 만들어놓은 아파트 단지를 산책한다는 것은 하루 운동 같은 느낌이다. 아파트 한 동 모퉁이를 돌면 다시 반듯하게 이어지는 보도블록과 아스팔트길. 운동기구와 놀이터 주변의 둥글게 타원형으로 만든 뱅뱅 돌아 걷는 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 도시는 움직이는 차들로 가득하다. 아파트 이름으로 구분한 단지와 단절되어 바로 옆인데도 돌고 돌아야 당도하는 또 다른 아파트 단지.


항장로 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어디로 걸어가든 다 이어진다. 내 발걸음이 길을 만든다. 철조망이나 담장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굳이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좁게 난 길을 막힘없이 열어준다. 하늘은 언제나 가깝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고, 길냥이들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곳곳에 있는 밥그릇에 머리를 숙인다.


길 위에서 느긋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난다. 겨울이라는 계절감각을 만나는 길 가까이 작은 텃밭들. 배추 몇 포기가 움츠리고 있는 어느 집 안마당도 정겹다. 낮 시간에 지나는 사람은 드물다. 길은 아직 눈 오는 날 정취를 간직하고 벽화도 드문드문 발견한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 향기로 옛 정취를 담아내는 이 거리가 낯설지 않은 것은 늘 기대하고 있던 삶에 한 조각이다. 지나친 작은 카페는 다음에 들러 보기로 하고 책방을 중심으로 동네 한 바퀴를 걷는 일이 내가 해야 할 두 번째 일과로 이어지기를 스스로에게 부탁하고 있다.


느릿느릿 달팽이 삶이 이어지는 일이 가능해지나 보다. 내 하루는 서울에서 지나던 속도감을 따라잡지 않는다. 낮은 낮대로 맑고 투명하며 밤은 밤답게 깜깜하다. 충분한 시간에서 온전하게 하루 세끼를 만들어 먹고 있다. 살아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주던 한 달 용돈을 생각해 보니 여기서 보내는데 필요한 생활비를 충당하고도 남아서 우습게도 나는 저축이라는 것을 할 수도 있다.


서울에서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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