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엄청난 굉음으로 놀라 잠을 깬다.
와우. 포클레인이 책방 앞에서 크르렁거린다. 그동안 쌓인 눈을 치우는 거다. 그야말로 옆으로 사람들이 움직일 만큼만 옮겨 놓는다. 여기 눈 치우는 방법인가 보다.
밤 사이 길냥이들은 빈 그릇만 남기고 보이지 않는다. 다시 밥과 물을 채우고 책방을 따스하게 할 궁리를 한다. 이렇게는 너무 추워서 겨울나기가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물러서지는 않는다. 실내에서 완전 무장을 하고 지내는 일도 필요하다면 하는 거다.
그러고 보니 책방 양쪽으로 의원과 한의원이 있다. 초저녁이면 지나가는 청소년으로 보이는 서너 명이 길냥이들과 놀다 가기도 한다. 책방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찾아 줄 날이 오기는 올까. 정지된 화면이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와 자동차와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멈춘다.
취업에 신경 쓰기보다는 살아가는 일에 순응하는 일이 더 급했던 시절이 대학 졸업 직후였다. 그해 서점에 들렀다가 만난 책은 <<슬로 라이프>> 세 가지 이름을 쓰고 있는 작가 쓰지 신이치를 접하면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 깊이 생각할 시간은 코로나 19 시기가 펼쳐진 때문이다.
엄마와 둘이서 집에서 보내는 동안 배달 음식 안 먹기부터 꼭 필요한 것 사기가 잘 해낸 일이었다. 습관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집안 곳곳이 창고나 다름없었다. 솔직해지자면 게으르기 때문에 그럭저럭 살아낸 일인가 싶기는 하다. 유일하게 멈추지 않은 구매는 책이었다.
다시 <<슬로 라이프>>를 펼친다. 그 시절에는 무엇이 나를 움직이고 있었던가. 밑줄 그은 책장을 펼치니 역시 좋은 선택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한다. 이 책에서 배운다. 뺄셈이 없는 슬로 라이프는 가짜라는 사실. 생태와 지속 가능성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허울에 불과한 말장난이 된다. 소비주의에 그럴싸한 이름만 붙인 채.
일터에서 더 많이 일한다는 의미는 더 많이 생태를 멀리한다는 일이기도 하다. 노동 시간이 다시 유연함이라는 단어로 대체되면서 늘어날 수 있다는 뉴스. 사회 구조가 20세기로 돌아가려는 것은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일이 아니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사유능력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문제의식을 이 나라는 언제쯤 가지게 되는 걸까.
여기는 일부러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 서울에서는 일상으로 열린다. 주변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은 모두 내 손 안에서 만난다. 굳이 인터넷으로 접속하지 않으면 다른 세상으로 하루가 지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뺄셈으로 시작하는 일이기도 했다.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장 아쉬운 것은 미술관을 쉽게 갈 수 있는 일이 멈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