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적절한 사람. 이런저런 설명 없이 그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가끔 다른 장소에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할 기계를 통하지 않은 숨소리까지 내 귀로 곧바로 들어오는 소리.
책방에서는 시간 흐름이 느리다. 하루가 길게 지나간다.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어도 초저녁이다. 치워둔 상자를 풀자 묵은 다이어리가 묶음으로 나온다. 무슨 마음이었는지 글을 쓰겠다고 소설 쓰기 동아리에 참석했다가 뒤로 물러섰던 그날 기억을 끼적여 놓은 메모를 발견한다.
일부러 네오관을 지나친다. 캠퍼스의 작은 숲이 좋다. 많은 것을 가려주니까. 세미나실은 4층이다. 익명성으로 작품 합평회도 아닌데 교수는 날카롭게 찔러댄다. 그게 그의 인기가 높은 이유라지만 오늘은 어떨지.
다시 혼자로 남자, 가을 앓이가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애초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이 착각일지 몰라.
9월 1일. 가을 시작.
"문장력은 가히 탑인데 왜 스트라이크가 터지지 않을까요? 네. 내가 내리는 결론입니다. 이 작품을 쓴 작가는 책 읽기가 1990년대로 멈췄다는 겁니다."
기가 막혔다. 어찌 저리 단언할 수 있는 거지? 교수는 신처럼 말한다.
끝.
P.S 내 의식 세계가 20세기말에 태어나자마자 멈춘 것일까? 내가 물리적 시간 흐름을 차단시킨 건지 모르지.
그 후로 나는 동아리에서 나왔다. 교수가 던진 그 말에 충격을 받고 주춤거리던 내가 이것도 할 수 없다는 확인으로 다시 소설 쓰기를 집어치웠다. 글 쓰는 일도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당혹감. 20세기말에 태어난 내가 21세기로 넘어서지 못한 익명으로서 내가 지금도 있다.
뒤늦게 도착한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덩치 큰 박스와 작은 상자에 담은 책이었다. 책방지기에게 책을 선물하는 정윤이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이 책 제목에 담긴 마음이 느껴져서 순간 행복하기로 한다.
소파 배드를 설치하면서 드는 생각은 이럴 때를 위해서라도 힘이 센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신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다. 아슬아슬하게 형광등을 갈아 끼워야 할 때, 벽에 못을 박아야 할 때, 다 미루어둔 일이다.
등에 푹신한 느낌이 드니 이제 제대로 자는구나 싶은 게 더 큰 안도감이 몰려온다. 엄마가 보내준 이불은 너무 커서 반으로 접어 걸쳐도 소파 배드를 충분히 덮는다. 이 공간에 와보지도 않은 엄마에게는 당연한 크기라지만 물어는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래, 더 푹신하면 좋은 거지 뭐.
오늘부터는 두 다리 쭉 뻗고 잠을 잘 수 있다. 더불어 나에게는 잘되라고 응원해주는 친구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