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북하게 책방 앞으로 쌓인 눈을 치우며 길을 내는 일이다. 쓰레받기가 그나마 얼어붙어 난처해진 길냥이 밥그릇 주변으로 길을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것을 하는 움직임만으로도 추워서 목도리와 장갑, 마스크까지 써야 했다. 이 눈길을 지나갈까 싶지만 또 모르니까 아침에 해야 할 일을 한다. 실내에서 이렇게 추워본 적도 기억에 없다.
늦은 저녁에 선희는 혼자 지내는 크리스마스 소감을 시작으로 통화가 끝나기까지 무려 40분이 지난다. 다시 조용한 밤을 지나면서 이 아침은 오로지 너무 춥다는 생각밖에 없다. 택배 지연으로 소파 배드는 결국 다음 날에나 받게 될 것 같다. 번잡하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해 주었으니 그것에 고마워해야 하나.
나는 전투적일 수가 없었어.
광장으로 나가야 전투적인 것은 아니잖아.
활동가로 살아가는 일은 어쨌든 밑밥이 있어야 한다고.
직업인데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
돈을 벌어? 내 돈을 쓰면서 한다니까.
그건 문제네. 시민운동이 그럼 돈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데.. 아니니까.
활동비는 교통비나 밥값 겨우 보탬이 되는 정도야.
그거야말로 비현실적이네.
맞아 맞아. 늘 쪼글쪼글한 부모님 얼굴이 있는데 가능하지 않지.
시작부터 다른 거지.
태어난 환경 차이야. 이재인이 선택한 삶은 그 방식부터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정해.
그래. 나도 알아. 이렇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지속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실험하는 중이니?
아니. 이렇게 선택해서 살 거야.
내가 먼저 회사를 그만둘까, 이재인이 먼저 일까, 궁금해지네.
분명한 것은 다시 서울로 가는 일은 없다는 사실. 이곳에 있는 게 만족스럽거든.
선희는 이곳 생활이 얼마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꿀 수 없다. 서울에서와 달리 이곳에서 나는 확실히 알아차렸다. 이 거대한 벌어짐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역은 나름대로 탈출하지 않는 비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내 비상구는 여기이지만 이곳 사람들 비상구는 자연이 아닐까. 바다와 숲, 땅과 사람들이 적당히 눈 맞추는 곳. 늙어가는 곳이라 젊은이가 없다는 시장 할머니 말씀. 젊은이가 왔으니 더 많이 준다는 그 깊은 주름에 웃음까지.
서울과 같은 방식이 아니어도 지역은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 중이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 사람들은 받아들이고 그에 맞게 적절한 삶을 살아간다. 누구도, 왜?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역사가 이미 가르쳐 주었기에. 순응만이 지금처럼 이라도 보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나는 몰랐다. 들어보지도 못한 지명이 적힌 작은 기차역 정취에 이끌려 덜컥 머문 곳이니까.
내가 있는 장소가 나를 생기 나게 한다면 그것으로 된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매일 아침 느낀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