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7층에서 하늘을 보려면 멀리 시선을 두어야 한다. 그 하늘은 언제나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내 눈높이로 하늘을 본다. 여기에서 하늘은 내 앞에 있다. 두 발을 땅에 딛고서 바라보는 하늘이 17층 높이보다 더 가까운 이유는 무얼까. 한참을 생각에 잠긴다.
페이스북도 인스타도 하지 않는 내게 크리스마스는 그저 그렇다. 우체국 옆에는 천냥 하우스라 쓰여있는 드물게 큰 가게가 있다. 흘낏 들여다보니 크리스마스트리가 앙증맞게 놓여 있다. 탁자 위에 놓으면 딱 좋을 크기. 오천냥이라고 써서 붙인 누런 종이가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일용품을 전자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곳이다. 트리를 꾸밀 필요도 없이 다 갖춰진 바구니.
혼자 보내는 크리스마스도 좋지 않나. 엄마와 이러저러 갖추느라 시끌벅적하던 크리스마스를 대신하기에 충분하다.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거슬러 가야 하는 이 마을의 역사성에 따르면 상가 구조가 설명된다. 길가에는 상가, 그 뒤로 살림살이할 수 있는 일직선 구조가 세 번째로 마음에 든 점이다.
작지만 내게는 넘치는 주방과 화장실의 널찍함.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면 불편함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하필이면 12월에 서둘러 이주해 이겨내야 할 추위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쯤이야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추운 건 추운 거다. 대형 난방기를 들여놓지 않는 한 오방난로와 전기히터라는 기계에 만족해야 한다.
나를 위해 크리스마스 요리를 하려고 식재료를 사 온다. 장바구니에 삐죽 나온 대파들이 영화 한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항상 이런 모습이 영화에 등장하기는 했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지만 왠지 그런 것이 더 자연스럽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기. 줄지어 선 사람들 뒤통수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길. 안전거리 유지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길. 서울에서 내가 발작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외출을 하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항장로는 그야말로 여유롭다. 길거리에 몇 안 되는 사람이 오고 갈 뿐이다.
내가 보내는 일상을 이렇게 써나간다면 누군가를 위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문학에서 얻은 길처럼 내가 쓰는 글이 또 하나 길을 만들지도 모른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고.
도대체 지역 인구가 얼마나 되나 찾아보니 면적 대비 너무도 적은 사람이 살고 있다. 945만 명을 넘은 서울과 5만 명이 겨우 되는 지역. 이 차이를 메꾸기는 절대로 가능하지 않다. 그 차이를 무엇으로 보상하고 있는 걸까 이 나라는. 지역과 불균형은 결국에는 불평등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들썩이지 않는다. 잠잠하다.
나도 혼자, 우리 딸도 혼자 맞는 크리스마스라니. 내가 갈까?
혼자서 잘 보내볼게. 폭설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있어.
외국이나 돼야 엄마가 쪼르륵 오지 않을 텐데. 엄마는 다시 어린애가 된 사람처럼 어리광을 부린다. 언니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