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04.

드디어 불 밝히다

by 이창우

서두를 필요가 없는 일이다. 책방이라고 내걸지만 딱히 책을 팔아보려는 생각도 아니었다. 그저 타인에 시선을 받지 않으면서 하루를 온전하게 보낼 공간이면 된다.


창업이니 개업이니 거창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에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조금씩 갖추어가는 외양과 궁금해서 삐죽 문을 열고 고개를 들이미며 묻는 사람이 손에 꼽히지도 않는다.


뭐 하는 곳이에요?

책방입니다.

젊은 사람이 기특하네.


주름진 얼굴이 웃음 지으면서 칭찬인가 싶은 말을 남기고 문을 닫고 지나간다. 집에 있는 책을 정리하니 한쪽 벽이 다 채워진다. 어지간히 사들였구나.


책방과 이어진 이 거리에서 홀로 기록하기로 한다는 것은 이곳에 머물면서 살아있음을 말하는 일이다. 무엇인가에 쓰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존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역사로 만들어진 곳이고 다만 도시처럼 빠르게 흐르지 않는 세월이 묻혀있을 뿐이다. 공간은 사람이 만든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공간은 더디게 시간 흐름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 살아간다. 나는 원하지 않아도 시간여행자가 된다. 이 공간에 있음으로 시간은 거꾸로 흐르고 있으니까.


결핍과 여유가 공존한다. 1킬로미터 안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이 있다. 마치 나를 위한 마을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어서 기다려준 것처럼 반갑다.


책방 유리벽 너머 마주한 버스정류장에서 이른 아침을 알아차린다. 버스를 기다리는 세 사람 모습이 정겨워지기 시작한다. 별 일 없이 하루가 시작되고 있다는 안도감.


살아가는 일은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중이다. 늘 분명하게 드러났고 다만 그 안에 내가 뿌옇게 서 있다. 여기에서는 또렷하게 내가 보인다.


말은 하지 않아도 된다. 꼭 필요한 말을 하고 일상은 굴러간다. 책방 주변을 둘러보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 골목길과 이어진 낡은 빈 집과 자주 눈에 띄는 길냥이들. 사람과 냥이가 적당히 서로를 탐색한다.


우체국 맞은편은 버려진 전통시장인데 입구에서 장사를 하는 곳이 서너 군데가 보인다. 그곳에 가면 내가 필요로 하는 식재료를 다 구할 수가 있다.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되묻는 내가 이상해진다.


전자카드가 필요 없는 곳, 현금을 주고받으며 지폐를 만지는 촉감이 정겨워지기 시작했다. 사회 질서 차이란 이런 것일까. 이런 차이가 거부감 없이 지나가고 있는 나라에서 서울은 독립적이다. 지역과 그 어느 것도 비교 대상으로 가능하지 않다. 슬그머니 분리된 공간.


책방 앞에 가지런히 놓아둔 사료와 물그릇을 채우는 일이 처음 책방 문을 열고 하는 일이 되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지나가던 길냥이가 잠시 들러 배를 채우고 목을 축이고 간다.


규칙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생긴 셈이다. 고마워요, 길냥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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