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03.

어루만지다

by 이창우

설렘과 충격, 깊은 곳에서 쑥 치솟아 오르는 감동으로 만나는 책이다. 이런 감정을 언제 느껴보았던가 생각해보면 지금 떠오르는 기억은 없다.


책 디자인부터 표지, 색감까지 거의 완벽하게 내 취향이다. 언제 이런 책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책장을 덮고 끌어안은 채 잠들기까지 충분히 만족한 나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품었다.


어김없이 찾아든 아침 유리벽 너머에서 부터 달려드는 하늘빛에 눈을 뜬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상자들로 가려진 유리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오늘의 문제 거리다.


내가 못하는 일을 내 동생이 해내다니 응원할게.


멀리 있어도 마치 곁에 있는 느낌으로 메시지는 숫자로 반짝거린다. 문득 든든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느긋해지는 이유를 생각하니 통장 잔고였다.


암막커튼을 달아놓아야 할지 블라인드를 설치해야 할지 모든 일을 하자면 돈이 필요하다. 언니가 경제독립 응원금이라며 보내준 돈을 쓰는 게 좋을지 더 버티어야 할지 고민하는 아침이다.


우선은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상자 치우기는 나중으로 미룬다. 벌거벗은 느낌으로 이 공간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지만 나는 노출증 환자처럼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채링크로스 84번지>>를 펼치기 전에 보았던 뉴스 꼭지가 다시 꿈틀대듯 머릿속을 헤집는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49재 기사로 가득한 날이다. 스물이 되던 그 겨울에 내가 어리숙하게 있다. 살아남은 나는 가라앉은 자를 위한 분노를 성급하게라도 내놓아야 했다. 스물에는 그래야 했다. 미적지근한 스물이 언제까지 나를 따라다닐지.


시골에 집을 얻어 갔다는 게 말이 되니?

지난 2년을 지나면서 준비하고 실행한 일이야.

뭐 먹고살려고?

먹고사는 일만 우선으로 말 꺼내는 두 번째 인간이야 선희야.

설마 요즈음 웃자고 꺼내는 청년 농부는 아니지?

엄마와 우선 헤어져야 했고 이참에 제대로 자리 잡으려고 한 선택이야.

아무튼 연말이라 정신없으니까 자세한 것은 다음에 얘기하자.


취업에 성공해 코로나로 미쳐 죽겠다는 시절을 잘 넘긴 선희와 서둘러 통화를 끝냈다. 이런 설명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만 하는 걸까 생각하다가 문을 달그락대는 소리에 유리문으로 다가간다.


뜻밖에 손님. 길냥이 두 마리가 나를 올려다본다. 이런이런 어쩌나.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그냥 보낼 수는 없다. 서둘러 찾아낸 대접에 물을 담아내어 놓는다. 아주 앙증맞은 동그란 검은 털 뭉치와 갈색 털 뭉치가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있다.


가장 시급한 일을 먼저 하려고 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고양이 사료를 어디로 가서 사야 하지? 뭐가 필요한 거지? 핸드폰을 뒤적이며 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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