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내리는 비는 짙은 회색빛으로 거리를 물들인다. 거리 쪽으로 난 유리벽은 맞은편 버스 정거장 사람들 표정까지도 관찰할 수 있다. 비어있는 여러 건물 중에서 선택한 이유다. 우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 모습이 고스란히 스쳐 지난다.
요즈음 서점에서 책이 팔릴까?
거리가 마음에 들어서 자리 잡은 거라니까.
뭐 먹고살며 임대료는 어떻게 마련하려고?
1년은 버틸 자금이 있다니까.
그 후에는?
무언가 찾아내겠지.
대책 없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심각하다 이재인.
서울에서 한 달 살아갈 돈으로 여기서 육 개월을 살 수 있다면 그게 돈 버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1년 지나서 계획을 세우기는 했어?
아니, 내일도 모르는데 1년 후를 어떻게 알아? 너는 1년 후면 취준생은 아닐 계획인가 봐?
그래. 알 수가 없지. 마음 편하게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시골 읍에서 창업하는 일은 못하지.
오늘은 가야 한다면서?
상자에 저 책들은 언제 정리하려고?
쉬엄쉬엄 할 거야.
혼자 두고 가기가 좀 그렇다.
혼자서도 잘하는 사람이야 난.
지난 이틀 동안 한숨만 쉬다 떠나는 정윤이 뒷모습도 힘겨워 보인다. 항장역으로 들어가는 그를 배웅하고 버스가 올 때까지 30분을 정류장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가 버스를 탄다. 버스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책방앞에서 멈춘다.
이곳 거리 풍경은 마치 반세기는 거슬러 가야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 멈춘 마을로 있다. 드디어 내게로 보낸 선물이 와 있다. <<채링크로스 84번지>> 영화 탄생을 도운 책.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준 책. 두 권을 주문해 한 권은 떠나가는 친구를 위해 다시 보내야 하니 우체국으로 가야 한다.
이곳을 선택하게 된 이유 중 또 하나는 우체국이 가까이 있어서였다. 편지 쓰는 일도 없는 시절에 사람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리는 작은 우체국을 발견하면서 주변이 낯익게 눈에 들어오던 순간을 기억한다.
서두르지 않고 이십 대를 보내고 싶은 바람과 상관없이 서른이라는 숫자에 조금 더 가까워지는 12월이다. 십 대부터 집을 나가서 혼자 살게 했던 엄마가 이틀에 한 번은 전화를 걸어댄다.
엄마가 찾아오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니 카톡을 남겨두고 무음으로 바꿔버린다. 바쁜 척할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은 것일까.
양장본 책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 어루만지면서 나는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가 다시 뉴욕시를 오가는 편지에 담아놓은 마음을 생각한다. 엄마가 가끔 꺼내보던 상자 안에는 편지들이 누렇게 누워 있었다. 너무 쉽게 누군가에게라도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이 시대가 내게는 빠르기만 하다.
책을 풀어놓는 일보다 우선 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전기장판에 스위치를 넣고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전기히터를 켜놓아도 이 공간을 덥혀주지는 않지만, 내 곱은 손을 녹여주기는 한다.
소파배드는 언제나 도착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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