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책방 13.

살아가는 기술

by 이창우

경제 성장이 멈추면 보이는 것은 자연이다. 제멋대로 자라난 야생풀과 꽃, 나무다. 사람 발 길이 없으면 자연은 살아 움직이고 하늘색을 되찾아 사계절을 만끽한다.


인구 소멸로 이어지는 지역을 죽어가는 도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여전히 국가 성장을 경제 지표, GDP로 가늠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생산성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만들어가는 일이 필요하다. 노동 가치가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데 거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내 생각이지만 문학 책을 읽으면 현재를 조금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고 과거를 되돌아보며 잃은 것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다. 삶을 모색하는 일이 다양하게 열린다. 노동과 미래를 바른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도 기술이라 생각한다.


기술혁신을 외치며 미래를 향한다는 말은 지극히 자본주의 기술력으로 만든 허상과 같다. 디지털이 만능이 아닌 것처럼 IT환경으로 놓친 일상은 다시 회복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세월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둘 수밖에.


코비드를 겪고 나서도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국가 정책들을 보면 개인이 삶 기술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내 선택은 좋은 일이다.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고 익숙해질 때까지 가족 도움을 받고 있지만 자립을 위한 탐색을 현장에서 할 수 있기에 더디지만 해 낼 수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회환경에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돈을 버는 일이다. 돈이 없다면 서울에서는 살아가는 일이 고통스러우니까. 여가가 없는 삶에서 시간은 너무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책을 읽을 여유는 생각도 못한다는 게 이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다.


도서관을 가면서 발견한 길모퉁이에 있는 작은 카페는 스무 살 시절 '아인'을 떠올리게 한다. 순간 그 공간과 이어진 시절 인연으로 주춤거리며 갇힌 나를 만난다. 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깨어나지 못할 기억에서 눈을 뜬다.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이스로 드려요?

아니요.

작은 테이블이 4개, 부채꼴 모양 카페 안은 투명하게 환하다. 유리벽을 두고 밖에는 빨간 파라솔이 있다. 그 사이 길냥이들 밥그릇. 여기도 길냥이가 들리는 곳이다.


커피 맛있네요.

처음 보는 분인데 여행 왔어요?

아니요. 지난 12월에 살러 왔어요.

요 근처예요?

네 우체국 근처 책방이에요.

어머나, 민하야 네가 봤다던 그 책방인가 봐.

한쪽 테이블에 뒷모습만 보이던 친구가 뒤돌아 보며 내게로 다가온다.


지나다 봤어요. 책방에 계세요?

네. 책방을 열었는데 오는 사람은 없고 햇볕 좋아서 산책 나왔어요.

책은 엄청 많아 보여서 들어가 볼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어요. 책방 앞에 길냥이들만 보고요.

다음에 들러요. 책도 빌려주거든요.

아, 맞다. 무료로 책을 빌려 준다고 붙은 거도 봤어요.

겨울 방학이죠? 고등학생?

아뇨. 자퇴했어요. 선생님들은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민하라는 친구는 엄마가 하는 카페 '모퉁이'에서 책을 읽고 엄마가 바깥일을 볼 때 카페를 지킨다고 한다.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는 책이 쌓여 있다.


모퉁이 카페를 지키는 엄마와 딸이 하얗게 웃는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살아온 이야기로 빠르게 친근해졌다. 학교를 나와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한다는 민하는 퍼스트 펭귄이다. 카페 운영만으로는 부족해서 민하 엄마는 다른 일도 병행하는 프리랜서라고도 한다.


언제든 책방으로 와서 책을 읽어도 좋으니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는 내내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쩐지 이 장소는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려준 것만 같다. 나와 비슷한 삶의 방법으로 잘 살아가는 그들을 발견한 기쁨으로 다시 행복해진다. 역시나. 잘 선택했어, 이재인.






이전 12화수상한 책방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