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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우 Mar 04. 2023

발리 : 가네샤 북샵

책방, 눈 맞추다 특파원 소식 01.



 안녕하세요, 세계를 여행하고 있는 배낭여행자 비더슈탄트(Widerstand)입니다. 저는 지난 12월 31일 여행을 출발해, 이제 동남아시아의 마지막 여행지 발리에 와 있습니다. 종종 세계 곳곳에서 책방의 소식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 섬은 자바 섬과 채 5km 되지 않은 해협을 두고 떨어져 있습니다. 수많은 섬으로 구성된 인도네시아에서, 이 정도의 거리는 아주 가깝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해협을 두고 떨어진 자바 섬과 발리 섬의 문화는 아주 다릅니다. 과거에는 자바어와 발리어로 아예 다른 언어를 쓰는 땅이었죠. 지금이야 모두 말레이-인도네시아어를 사용하지만, 종교는 여전히 다릅니다. 인도네시아 인구는 대부분 이슬람 신자이지만, 발리만큼은 힌두교 신자가 다수입니다.     



 제가 오늘 방문한 책방은 발리 섬의 고도(古都) 우붓에 있는 “가네샤 북샵”입니다. 힌두교의 신인 가네샤의 이름을 달고 있고, 서점 앞에도 작은 가네샤 신상이 놓여 있습니다.   

  

 작은 책방에는 영어와 말레이어로 된 여러 책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신간뿐 아니라 오래된 책을 받아 파는 중고서점의 역할도 합니다. 일부 책들은 무료 나눔을 하고 있기도 하죠. 특히 발리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된 책을 팔고 사는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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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휴양지로 알고 있는 발리이지만, 사실 발리의 역사에는 아픔이 많습니다.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에 가장 격렬히 저항한 곳이 발리 섬이었거든요.     


 네덜란드가 상륙했을 때 발리 섬은 힌두교를 믿는 여러 왕조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각 왕조는 무력을 앞세운 침략에 맞섰습니다. 그러다 끝내 패배하면, 왕족과 귀족이 모두 집단 자결했습니다. “푸푸탄”이라고 불리는 이 의식은 네덜란드 식민 지배의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장이었습니다.     


 발리 섬을 장악한 뒤 네덜란드는 발리를 휴양지로 개발했습니다. 발리의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고 관광 자원으로 발전시켰죠. 강력히 저항했던 과거 왕조에 대한 향수를 지우기 위함이었고, 인도네시아의 통합을 저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발리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신혼여행지가 되었습니다. 편안한 휴양지로 유명해진 나머지, 가끔은 발리가 인도네시아에 속한 것을 모르는 분들이 있을 정도죠.     



 가네샤 북샵은 우붓의 왕궁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안에는 책과 함께 작은 엽서들을 팔고 있더군요. 사원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을 그린 엽서 한 장을 집어들었습니다.     


 상처와 흔적이 쌓여 있지만, 그 위에서 여전히 무심하게 아름다운 해변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남국의 작은 섬에서, 지역과 공동체를 위해 문을 여는 작은 책방.     



 마침 서점 바로 옆에 우체국이 있더군요. 장항의 책방에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엽서 한 장을 띄워 보냅니다. 서늘하게 부는 우기의 바닷바람 한 조각도 같이 실어 보냅니다.  


    

충남 서천군 장항읍 장항로 127-2 


“책방, 눈 맞추다”에 오신 분들이라면, “가네샤 북샵”에서 온 엽서의 행방을 책방지기에게 여쭈어 보시길.     


 * 혹 제 여행기나 역사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방문해 주세요. 블로그 외에도, 브런치와 오마이뉴스에서도 같은 글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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