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으로 달려가는 길 위에서 수많은 말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산중턱에 걸친 구름무더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서 비가 걷히기도 쏟아지기도 하겠다는 짝꿍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거구나 하면서 이 풍경을 본 기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실없이 웃는다. 처음 가는 길을 갈 때 만나는 생경함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 익숙한 길을 오고 가는 일상에서 낯선 감정은 흥미롭다.
모두 떠나도 나만은 지켜내야 하는 공간이 몸 누이고 쉴 수 있는 곳이 되고는 한다. 나이 듦에서 발견하는 고독함이기도 하다. 익숙한 사람들이 떠나도 새로 만날 인연이 이어질 그 가능성은 펼쳐있다. 더디게 찾아올 누군가를 위한 쉼터에서는 홀로여도 가득하다. 숲바람과 이름 모르는 새가 지저귀며 날갯짓하고 어디선가 날아드는 풀벌레도 그냥 좋다. 눈을 돌리면 초록으로 널브러진 곳에 가을꽃도 같이 한다.
동아리 모임은 모두에게 편리한 장소로 옮겼지만 여우골 책방은 주말에 한 번은 기다리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나를 맞아준다. 평일에는 무인 책방으로 이웃에 보살핌을 받고 있는 책방이 주말만은 오롯이 나를 반긴다. 하늘빛이 조금씩 환해지자 설레기 시작하는 나는 이미 그곳에 가 있다.
삶을 짓는 일은 태백산맥 10권을 만든 원고지를 쌓아 올린 높이와 분량으로는 비교조차 안 된다. 그 일은 내가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이 다시 열린다면 나를 휘젓는 말들을 글자로 만들어 놓는 일은 생각보다 유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