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을 위하여*~
그가 붉은 수염 휘날리는 책쾌가 된 것은 이러하다.
아주 먼 옛날이었나 보다. 멀고먼 미래였는지도, 산 연못가에 기대앉아 세상의 서책이란 서책은 모두 읽었다. 더 이상 읽을 서책이 없을 정도였다. 불현 듯 세상이 궁금해졌다. 쓰고, 짓고, 읽고, 평하고, 분석하고, 시비하고, 그곳 서생들과 신선놀음을 하고 싶었다. 조선의 선비들만큼 서책을 즐겨하는 곳은 없다하여 찾아왔건만 신선놀음은 고사하고, 서책을 접하기조차 열악한 여건투성이었다. 그런 중에도 서책에 대한 열망만큼은 어찌나 뜨겁던지, 애서가들의 갈증을 도저히 모르쇠 할 수 없었다. 차마 그대로 떠날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영조 때부터 시절이 수상하게 흘러가는 그 시대. 이름께나 날렸던 ‘명물’로 여러 문헌에는 그에 관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정약용의 『조신선전』, 조수삼의 『죽서조생전』 조희룡의 『조신전선』 등에서 서적 중개상으로서 그의 활약이 당시 많은 지식인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었음을 보여 준다. 소설 속에 등장한 인물은 작가의 상상력과 함께 다른 세상, 다른 꿈을 꾸는 이들에게 그의 존재는 설렘이었다. 조선사회의 존립 기반이 독서에 있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책 속으로 들어 가 볼까나.
조선 영조대의 임오화변과 그에 따른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조생이 지켜본 세상은 신선놀음은 고사하고, 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찾아 아무리 달리고 달려봐도 도무지 나아질 줄 모르는 세상에 지쳐가고 있었다. 정쟁과 탐욕, 암투만이 판치는 세상으로 결코 나서고 싶지 않을 만큼 만사가 귀찮기만 할 때였다. 그런 자신에게, 이곳 세상에 기어이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새삼 각인시켜주었던 아이가 뚱이였다. 장군이 되고자 나무칼과 방패를 잡고 산 속에서 짚인형과 씨름을 하는 어린 소년의 기합소리는 마음을 이끌었다.
“하아, 왜 생각처럼 안 될까?”
“정말 멋진 걸.”
“누구......? 혹시 산도깨비?”
“그런데 왜 혼자야? 함께 놀면 더 재밌지 않을까?”
“전 장군이 될 거거든요. 강감찬이나 이순신같은 장군이 될 거라고요.”
“아까 보니까 동작이 생각처럼 되지 않나 보지?”
“네에.”
“그럴 땐 책을 보면 되는데.”
“전 책만 폈다 하면 하품부터 나거든요. 그리고 장군은 창, 칼만 잘 다루면 되는 거잖아요.”
“아니지. 강감찬 장군도, 이순신 장군도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데, 병서를 비롯한 책도 많이 읽었는걸.”
“그럼 전 장군이 못 되는 거네요?”
조생은 선조 때 훈련도감 계청이던 한교가 명나라 장군 척계광이 지은『기효신서』를 요약하고, 우리 군대와 지형에 맞게 변형시킨 무술책을 꺼내 주었다.
책쾌, 조생에 관한 이야기들은 시대의 암울함에도 그로하여 유쾌하다.
조생이 소년에게 건네준 서책은『무예제보』인데 그 후 1790년 정조가 무예제보의 내용을 보완하고 이용에 편리한 체제로 편찬의 방향을 잡은 후, 이덕무, 박제가 등에게 작업토록 하여 간행한 훈련용 병서로 탄생했다. 한문본 4권과 한글해석본 1권으로 이뤄져 있어 필요한 이들의 접근을 용이토록 하였다. 소년에겐 돈도 받지 않고 서책을 건네준 조생이 도깨비였던 것이다. 그 서책을 받았던 아이 ‘뚱이’는 벼슬길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의 손자 헌수가 무과에 급제하여 도깨비한테 꼭 갚아달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신 할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다.
그는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술을 마시며 삶을 즐기고자 했던 신선다운 기질이 있었던 인물이기에 당 대에 조생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의 기록들은 조신선으로 기억하고 있다.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마치 나는 듯 책을 소매에 가득 가지고 다니며 책장사를 했던 이였기에 신선과도 같았으리라. 지금이야 세월이 얼마나 좋은가. 인터넷을 통해 내가 원하는 책들은 하루만에 배송되어 내 손에 어김없이 들려진다. 청계천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섰던 중고서적들의 쾌쾌한 공기는 맡을 수 없는 쾌적한 시대에 마음은 늘 불쾌함으로 살아가는 시절, 이게 좋은 세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서가에 쌓여진 책들에는 읽는 이의 손길과 마음뿐만 아니라 그의 시간도 겹겹이 쌓여있다. 누렇게 스스로 세월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오래된 책부터 현란하게 뽐내는 새롭게 만나지는 책들마다 책 읽는 이들의 삶을 품고 있다. 이제 책들은 사회 기득권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에게 원하기만 한다면 우선 순위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소비의 품목이 되었다. 개인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경험을 대신하여 적은 돈으로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럼에도 책은 책쾌의 존재와 함께 시간 저 편으로 감추고 말았다. 책을 읽지 않는 한국사회는 휘청거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휘청거리는 날에는 카페콘비라가 있는 카페로 간다. 나의 욕망을 부추기고 좋은 시간들을 향유하기 위해 책을 마주하고 벗을 만나러 간다. 책으로 이어지는 좋은 사람을 마주하고 이 암담한 세상살이를 위로 받는다. 책과 커피향기, 사람 냄새 속에서 내 삶은 원기왕성하게 회복되곤 한다. 좋은 삶을 누리는 개인들이 넘치는 사회, 카페에서 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는 건강을 찾을 수 있다. 이 시대, 책쾌 조신선이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은 혼돈에서 명쾌하고 싶은 나만의 욕망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