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유희

시간을 거슬러

by 이창우

최근에 드러나는 세월호참사와 관련된 사실들이 속속 밝혀지면서 국가의 야만에 협력하는 이들의 행위들이 드러나고 있다. 홀로코스트에서 구조된 자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이끌어 냈던 사건들이 또다시 일어날 수 있고, 다른 형태로 세계에서 자행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용서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국가가 저지르는 불법 폭력은 늘 새로운 광대를 찾아낸다.


감정노동을 엄밀히 정의하면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 유형이다. 그런 의미로 정치인도 일종의 ‘감정노동자’라 하겠다. 일반인과 달리 감정노동자로서의 일부 정치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감정노동을 뻔뻔하게 즐기는 능력을 갖게 되어 그것을 완력으로 이용까지 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땅의 대부분의 감정노동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신음하게 된다.


노동자들의 잇단 자살 이후에야 그나마 세상의 관심이 쏠렸던 삼성전자서비스 사태는 거대 기업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무여건이 하나둘씩 공개됐고, 불법하도급 의혹, 노조활동 방해에서부터 위장폐업에 이르기까지 노조탄압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기준단체협약을 이루어 냈다 하여도 여전히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극심한 갈등과 고강도 투쟁, 그리고 감정노동자들의 죽음이 있다. 삼성본관 앞에서 44일 만에야 고(故) 염호석 씨의 영결식이 진행되었다.


지난 일주일 뉴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다 열 개의 단어로 지난 30여 년 간의 시간을 지나면서 드러난 중국 사회를 말하던,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겹쳐진다. 눈에 들어오는 반복되는 단어들에 우후죽순 감정노동의 트라우마를 만나고 있다.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한국을 말할 수 있는 열 개의 단어를 생각한다. 그 열 개의 단어는 또 하나의 단어 ‘사태’로 모아져 있었다.


먼 시간으로 갈 것도 없다. 2012 대선의 겨울부터 궤적을 돌아보면 NLL대화록 사태를 시작으로 진주의료원 사태, 국정원 사태,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난 시국선언 사태, 인터넷의 일베사태, 개성공단 사태, 해병대캠프 사태, 윤창중 사태, 밀양송전탑 사태 등, 급기야 세월호 참사라는 새로운 형태의 홀로코스트가 자행되고 말았다. 아직도 열거할 ‘사태’가 마치 유행처럼 줄을 잇는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감정 노동은 극한까지 갈 수밖에 없는 거다. 세대를 초월하여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개인들의 자살사태는 무엇으로 표현해야 적절한가. 홀유의 말들이 내 주변을 떠돌며 결국에는 중증의 감정노동자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사회의 현실에 숨이 턱턱 막힌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국가의 면적이나 인구로 비교하기 어려운 두 나라의 모습이지만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쉽게 발견된다.


위화는 중국에서 ‘홀유(忽悠)’의 의미는 맨 처음의 의미를 벗어나 점차 하나의 속어로 자리 잡아 중국동북지역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속어로서 ‘홀유’는 똑같은 발음의 ‘호유(胡誘)’ 즉 ‘어지럽게 잘못 인도하다’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책에서 말한다. 이후 끊임없는 변이가 일어나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뜻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허풍과 선동, 종용의 의미를 갖고 허튼소리나 뜬소문, 사기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해학과 조롱, 근거 없는 날조와 투기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홀유는 중국어의 만능열쇠가 되어 관련된 단어의 말뜻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입만 열었다 하면 홀유를 하게 만들었다는데 한국 정부의 홀유는 ‘좀비 언론’들이 가세하여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위화는 ‘홀유’라는 단어가 중국 사회의 윤리 및 도덕성 결핍과 가치관의 혼란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말한다. 그 혼란 속에서 한 개인도 정부를 상대로 홀유하기 시작하고, 그 사회는 홀유라는 언어유희에서 종국에는 홀유가 실제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하면서 어느 날 내가 속임수나 헛소문 같은 단어에 합리성이라는 외피를 입혀 놓은 홀유에 치여 죽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스컴에서 넘쳐나고 번지는 가짜 뉴스의 등장으로 홀유된 사람들의 모습들과 이런 일들에 법률적 책임은 물론 도덕적 책임조차 지지 않아도 되는 곳이 한국사회이다. 정부가 국민을 우롱하며 진행하려는 관료들의 인사정책에 따른 과정들도 개인들의 감정들을 국가로 향한 트라우마로 몰아간다. 이 땅의 감정노동자들은 지금도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과 투쟁 중이다. 한국사회는 알고 있다. 모르고 있는 게 아니다.



2015. 11. 19.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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