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돈을 받지 말라고?

[인생 복습 ⑥] 열정 - Passion

by 이창우

내게 ‘열정’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Rod Stewart의 ‘Passion’이다. 1980년 발표된 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그다음에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Rod Stewart는 노년이지만 여전히 그의 음악만큼이나 열정이 느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평생을 살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느낌표를 만난다.

열정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끊임없이 자신을 내보이는 움직임. 그 가운데 자연스레 밖으로 풍기는 삶의 건강한 기운 같은 거다. 내게 열정은 이런 의미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치열하지 못하나 보다. 애초에 선택한 일들에 쏟는 기운을 보자면 꽤 열성적이다.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는 노동을 하다 보니 절로 스며 나오는 기운으로 지나온 시간이 대부분이다.

고백하자면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할 만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해야겠지. 아무튼 시간의 여유가 넘치다 못해 가지고 있는 것이 시간밖에 없어도 나는 그것대로 살아간다. 아마 안 하던 일을 해가며 내 시간을 때우는 것이 싫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루가 고스란히 내 눈에 다 읽힐 만큼 느리게 지나는 시간을 산다.


열정은 유난스럽지 않았다. 마구 소리 내지 않아도 그저 작은 움직임으로 그저 그곳을 향해 가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막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열정이라는 시간의 속도는 일상의 속도와는 달랐다. 하지만 열정이 담긴 시간은 대체로 정지된 아니 봉인된 기억 저장소에서 쉽게 변질되지 않는다. 물론 내가 기억하고 싶은 그리움의 단편들이겠지만 그것만도 내 남은 인생 복습은 유쾌할 것 같다. 아니 유쾌해지고 싶다.



존 매드 감독의 영화 <베스트 엑조틱 메리 골드 호텔>의 노인들의 모습은 '열정'이란 말에 어울리는 느낌표를 건넨다. 남편만을 바라보며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녀에게 낯선 곳에서 만나는 것은 그녀 안에 틀어박혀 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죽음 이후 이미 황혼에 접어들어서 지나온 삶의 결핍을 느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이 아닌 남편의 삶의 한 부분에 놓여있던 시간을 깨닫는 경우는 많을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최선을 다하면 그만, 다른 건 문제 될 게 없다. 아무것도 감내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가 다를 것을 기대한다. 오히려 같은 현실의 반복에 두려워한다. 그러니 변화에 기뻐해야 한다. 누구의 말처럼 다 괜찮을 테니까."


이 영화에서 그녀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되뇌는 말이다. 자신이 변화하고 싶다는 열정에 다가오는 두려움은 시간이었다. 그녀에게 남은 시간을 물리적으로 한정 지어 버린다면 ‘시작’이란 불가능했다. 하지만 열정이 그것을 뛰어넘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라고 생각한다면 그다음은 행동이다.


황혼이지만 그녀가 접근하는 삶의 방식은 청춘의 그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나이에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스스로 의구심을 갖지만 그런 과정에서 그녀는 삶을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그녀의 물음이 나이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던 것을 기억한다.


언제나 ‘시작’은 내 안에 쌓인 열망의 두께였지 내가 끌어들이는 외부에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의 실체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조심스레 닫힌 문을 열고 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열정 페이는 사회적 강자가 거꾸로 매달아 놓은 장식용 튤립이다.


이 시대에 미화된 ‘열정 페이’는 아이러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돈이 뭔 상관이야? 이것은 개인의 열정을 이용한 사회 제도로 정착한 노동 착취에 가깝기에 가짜다. 자발적이라 할지라도 이미 사회적으로 강제된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열정 페이’로 쏟아내는 열정은 시간을 깎아 먹는 것이 되기 쉽다. 결국, 자신의 생명력이 소진될 수밖에 없다. 열정은 소진되는 힘이 아니라 축적되는 힘이다.


노동은 한정된 시간을 영원으로 만들 수도 있을 만큼 건강하다. 그렇기에 열정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나브로 축적되는 기운 같은 거라 생각한다. 때로 이 세상에서 나를 방어하기 위한 아주 내밀한 호흡이라 생각한다. 삶에서 느끼는 자신만의 귀한 감정이다.


내 안에 쌓아놓은 열정의 두께만큼 남은 삶의 시간은 소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지. 삶의 끝을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는 것은 아닐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잘 살아내려는 것이 열정이지 싶다. 내 앞에 있는 당신과 나누는 시간과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아주 짧은 소통의 카톡음에서도 가능하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시간으로 될 때 열정은 저절로 스며드는 좋은 바람 같은 것이었다. 나를 살아나게 해 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없었다. 나의 두 발을 땅에 딛고 푸른 하늘을 향해 마음껏 숨 쉴 수 있도록 두 팔을 벌려 바람과 빛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열정이다.








이전 05화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