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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영 Mar 29. 2021

어떤 욕심

매주 월요일 밤마다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다. 정지우 작가님이 페이스북으로 모집한 온라인 모임이다. 학인은 열 명밖에 안 되는데,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서울 사람, 강원도 사람이 다 섞여있다. 스무 살 대학생부터 그 학생의 엄마뻘 직장인까지,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사는 곳도 각양각색이다. 총 일곱 번의 모임 중에 이번 주 월요일까지 다섯 번의 모임을 가졌다.


각자 자기 글을 써와서 함께 읽고 ‘합평’을 하는 자리라 여느 친교모임처럼 좋은 말만 오가지는 않았다. “기대 이하”라던가, “중2병 같다”던가, “일기 같다”던가, 예의바른 말투로 별별 혹평을 일삼는 자리이기도 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끈끈해질 자리는 아닌 셈이다. 그런데 실제로 글쓰기모임 단톡방에는 월요일만 기다린다, 만나자, 밥을 사주겠다, 행복하다, 기타등등의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월요일 저녁 9시에 시작한 모임은 다음날 새벽 2시가 넘어서까지, 5시간이 넘게 이어지기도 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한 모임을, 새벽 2시까지 이어가겠다고 의도한 사람은 정말이지 아무도 없었다. 하다보니 그렇게 된 일이었다. 저녁 8시 반부터 zoom을 켜놓고 모임을 시작하던 정지우 작가님 역시 화수분처럼 뭔가를 계속 쏟아놓았다. 글쓰기의 소재를 구하는 방법, 글쓰기를 할 때 주의할 점 등을 비롯해서 학인 한 명 한 명의 장점 혹은 단점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는 그걸 놓칠세라 마구 필기를 했다. 지치지도 않고 말이다. 첫 시간에 분명히 목이 잘 쉬는 체질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25시간 가까이 면밀히 관찰한 결과, 정지우 작가님의 성대는 그렇게 약한 편이 아니라는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다.


작년 한 해는 나에게 참 바쁜 시간이었다. 아동청소년그룹홈으로 직장을 옮겼고, 새로운 직책을 맡았고, 처음 해 보는 일을 했다. 더군다나 내가 일하지 않았던 4년치 업무에 대한 보건복지부 평가 작업에, 지자체 감사에, 코로나까지 겹치는 바람에 작년 한 해는 연장근무만 108시간을 했다. 매주 수요일은 24시간 근무를 했는데도 말이다. 그 와중에도 내가 빠뜨리지 않으려고 바득바득 챙기던 것은 바로 독서였다. 그렇게 작년에 읽은 책이 딱 90권이었다. 바쁘면 바쁠수록 더욱 강박적으로 책 읽는 시간을 챙겼다. 의자에 앉아서 책을 붙들고 책장을 넘기는 것조차 힘에 부치는 날이면, 침대에 누워서 리모컨으로 거치대에 얹어둔 전자책 책장을 딸깍딸깍 넘기는 식으로라도 책을 읽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정지우 작가의 글쓰기 모임에 참여를 했다. 그래도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글 좀 쓴다는 얘기도 종종 듣고 해서 내심 정말 그런가 하고 살아왔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당황스럽다”, “정신 사납다” 같은 혹평을 듣고나서는, 난 정말 글을 못 써, 하는 식으로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버리고는 했다. 심지어는 열 명의 학인들 중에서도 나만 빼면 다들 글을 잘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서는, 더 이상 어떤 것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인들 말마따나 “글쓰기모임이 열리는 월요일만 기다리”게 된 이유는, 즐겁기 때문이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직장생활을 한 지는 20년이 좀 넘었다. 그렇지만 결혼하고 애 낳고 공부한다고 쉬었던 기간을 빼고 나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기간은 12년이 좀 안 되었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나와 함께 공부를 이어가기로 했던 남편이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경단녀가 되어 거의 매년 계약직 일자리만 쫓아다녔던 것 같다. 누군가와 인사를 나눌 때마다 명함을 내미는 시간이 되면 괜히 위축이 되어 수줍게 웃음을 짓고는 했다. 직장 안에서 나만 명함이 없는 시간을 몇 년씩 보내기도 했지만, 명함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내 자리의 보잘 것 없음을 기가 막히게 읽어내는 것만 같았다. 가난하고 실패했다는 생각도 가끔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달랐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떤 날은 내가 나를 정직하게 표현했다는 성취감이 들었고, 어떤 날은 아주 성실하게 살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어떤 날은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주 정신이 나간 날은, 내가 꿈꾸는 세상을 만드는 일에 내 글이 어떤 기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마구 흥분이 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이 세상에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로 세상에 드러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한 이후로, 어쨌건 2주마다 에세이 한 편씩을 제출하고 있다. 일기장에 몇 줄씩 혼자 글적이는 것은 해도, 한 가지 주제를 놓고 틀이 갖춰진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은 내게 보통의 의욕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속에서 맴도는 온갖 이야기들을 종이로 끌어내기까지, 일상이 끼어들어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순간이 오더라도, 적어도 지난 5주간은 집중력을 놓지 않고 갖은 공을 들이는데 성공을 했다. 기껏 꺼낸 이야기마저도 정리하고 흐름을 만들기까지 품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면서 자꾸만 사그러지는 모습은 여전했지만,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학인들의 존재를 떠올리면서 조금씩 힘을 낼 수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밍기적거리는 동안, 수안님은 또 엄청난 글을 쓰고 있겠지, 같은 생각 말이다.


아무튼 글쓰기 모임을 통해 2주에 한 편씩 정식으로 완성한 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성취감은 대단했다. 더군다나 모임에서 썼던 글을 퇴고하고 나서 더 나아졌다는 평을 들을 때면, 성취감을 훨씬 넘어서는,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 같은 것이 울컥 올라왔다. 어쩔 줄 모르는 기쁨이란 게 이런 건가 싶기도 했다. 꽤 괜찮은 에세이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기쁨이라던가, 나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라던가, 그냥 스쳐지나가던 순간이나 생각을 잡아서 한 편의 글로 완성하고 나서 맛보는 촘촘한 삶의 밀도 같은 것들이 바로, 내가 글쓰기 모임에서 맛본 즐거움이었다. 아마도 글쓰기 모임 학인들이 모다 밤잠까지 설쳐가며 월요일만 기다리는 이유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날 둘째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왜 글을 잘 쓰려고 하는거야? 그냥 글을 쓰면 되는 거 아니야?”

내가 되물었다.

“글을 잘 쓰려는 욕심을 내지 말라는 말이야?”

“아니, 그냥 글을 쓰는 것으로만 만족하는 게 아니고, 굳이 글을 잘 쓰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엄마는 글을 통해서 내 안의 생각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만의 언어로 정교하게 다듬어내고 표현하는 게 좋아. 무엇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가장 좋아. 그래서 자꾸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을 내는 것 같아.”


어쩌면 더 사랑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더 인정받고 싶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아는 가장 이기적이고 치사한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나의 이런 욕심을 존중하기로 했다.


2021.02.27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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